반도체 수출 호조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7%를 기록하며 경제 회복의 신호를 보냈으나, 고용 증가 폭이 16개월 만에 최저치로 추락하고 가계대출이 급증하는 등 내부적 불안 요소가 심화하고 있다.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은 다음 주 고용동향 및 가계부채 지표를 잇달아 발표하며 시장 질서 확립과 거시경제 안정을 위한 정책 방향을 재점검할 방침이다.
반도체 업황의 완연한 회복세가 한국 경제의 외형적 성장을 견인하고 있으나 민생 경제의 핵심 지표인 고용과 부채 부문에서는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한국은행이 오는 9일 공개할 1분기 실질 GDP 성장률 잠정치는 지난 4월 발표된 속보치인 1.7%의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동 전쟁 등 대외적 변수가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반도체를 필두로 한 수출 실적이 견고하게 뒷받침되면서 경제 전반의 성장 동력은 일단 확보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상의 성장세가 가계의 실질적인 소득 증대나 내수 소비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성장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이 정책적 고민의 지점이다.
국가데이터처가 11일 발표할 5월 고용동향은 내수 경기 부진의 실태를 가늠할 수 있는 결정적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15세 이상 취업자 수는 2,896만 1,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7만 4,000명 증가하는 데 그치며 2024년 12월 이후 가장 저조한 성적표를 남겼다. 중동 분쟁에 따른 고유가 압박과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기업들의 신규 채용 여력이 위축된 것이 고용 시장의 한파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취업자 증가 폭의 둔화 흐름이 5월에도 지속될 경우 정부의 일자리 대책 및 내수 부양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금융 시장에서는 자산 가격 상승 기대감에 편승한 '빚투' 열풍이 가계 부채의 건전성을 위협하는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이 11일 동시 발표하는 5월 금융시장 동향 및 가계대출 동향 통계는 신용대출을 포함한 가계 빚의 팽창 속도를 가감 없이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4월 예금은행 가계대출 잔액이 2조 1,000억 원 늘어나며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린 가운데, 5월에도 증시 호조를 노린 개인 투자자들의 대출 수요가 집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당일 가계부채 점검회의를 소집하여 시장의 과잉 유동성을 억제하기 위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다.
통화당국의 수장인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12일 창립 76주년 기념사를 통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포함한 향후 통화정책의 경로를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신 총재는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이미 금리 인상 카드를 시사한 바 있으며, 이번 기념사는 시장의 기대 인플레이션을 꺾기 위한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발언이 주를 이룰 것으로 관측된다. 한은 관계자는 "물가 안정과 가계부채 억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시장의 유동성 파티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명확한 신호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통화당국의 이러한 태도는 시장의 '빚투' 심리를 억제하고 법치와 효율 중심의 금융 질서를 재확립하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은 디지털 금융 시대의 새로운 리스크 관리와 민간 자본의 생산적 운용을 위한 행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10일 5대 금융지주 회장단과 만나 인공지능 전환(AX)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해킹 및 보이스피싱 등 디지털 리스크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는 기술 진보가 가져올 수 있는 금융 보안의 취약점을 선제적으로 차단하여 시장의 신뢰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아울러 12일에는 출시 직후 6,000억 원의 판매 물량이 완판된 국민참여형 국민성장펀드의 운용사들과 간담회를 갖고, 실질적인 수익률 제고를 통해 국민의 자산 형성 지원과 국가 성장 동력 확보를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구상을 구체화한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성장률 지표가 반도체 등 특정 산업에 편중되어 있어 착시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을 제기한다. 수출 지표의 화려함 뒤에 숨은 자영업자의 몰락과 가계 실질 소득의 감소는 경제 체질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계적 중립 관점에서 볼 때 고금리 기조의 유지는 부채 억제에는 효과적이나 서민 경제의 이자 부담을 가중시켜 내수 침체를 심화시킬 수 있는 양날의 검과 같다. 따라서 단순한 수치 관리보다는 취약 계층의 충격을 완화하면서도 시장 경제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정교한 정책 조합이 요구된다.
향후 한국 경제는 대외 변동성에 대응하는 동시에 고용 회복과 가계 부채 관리라는 난제를 동시에 풀어가야 하는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중동 정세에 따른 에너지 가격 변동과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는 상시적인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와 통화당국은 지표의 일시적 반등에 안주하기보다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가계 대출의 질적 구조 개선에 매진해야 한다. 시장 질서를 바로잡고 경제의 펀더멘털을 강화하는 보수적이고 원칙적인 접근만이 장기적인 저성장 국면을 돌파하는 유일한 해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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