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과거 데이터 외면한 선관위의 50% 획일 행정, 송파구 투표 중단 사태 불렀다

음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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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발생한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역별 투표 성향을 무시한 채 본투표 용지 인쇄 비율을 50%로 일괄 설정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졌다. 송파구의 경우 전체적으로 4만여 장의 용지가 남았음에도 잠실과 문정 등 본투표율이 50%를 상회하는 특정 지역에서 용지가 고갈되어 투표가 최장 오후 10시까지 연장되는 파행을 겪었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선거 행정의 경직성과 지역별 투표 행태에 대한 정밀 분석 부재에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중앙선관위는 본투표 용지 인쇄 비율 하한을 전체 유권자의 50%로 설정하는 지침을 내렸으나, 이는 본투표 집중 현상이 뚜렷한 지역의 특수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 송파구와 인천 연수구 등 투표율이 높은 지역 선관위들이 이 지침을 기계적으로 따르면서 현장의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송파구의 객관적인 투표 데이터를 살펴보면 구 전체의 용지 수급에는 이론적으로 문제가 없어야 정상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송파구 선거인 수는 총 56만 5,368명이며, 이 중 사전·거소투표에 참여한 13만 2,207명(23.38%)을 제외한 본투표 참여자는 23만 9,910명(42.43%)으로 집계됐다. 선관위가 인쇄한 것으로 추정되는 28만 2,000여 장에서 실제 투표자 수를 차감하면 약 4만 2,000장의 여분이 남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행정 편의주의적인 배분 방식이 동별로 극심한 편차를 보이는 투표율 실태를 간과했다는 점이다. 송파구 내 잠실2동(50.48%), 잠실4동(53.31%), 문정2동(52.08%), 잠실7동(51.93%) 등은 본투표율이 이미 전체 유권자 대비 50%를 넘어선 것으로 분석됐다. 구 전체로는 용지가 남았음에도 정작 유권자가 몰린 개별 투표소에서는 용지가 고갈되어 투표가 중단되는 역설적인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특정 지역의 높은 본투표율은 이번 선거에서 처음 나타난 돌발 변수가 아니라 과거부터 지속된 고유의 특성이다. 사전투표 도입 이후 투표율이 낮았던 제8회 지방선거를 제외하면, 제6회와 제7회 지방선거에서도 가락2동, 잠실2·4·7동, 문정2동의 본투표율은 매번 50%를 웃돌았다. 가락2동의 경우 제6회 지방선거 당시 본투표율이 55.89%에 달했으며, 잠실7동 또한 59.56%를 기록하는 등 투표 성향의 일관성이 뚜렷하게 관찰되어 왔다.

송파구의 평균 총투표율(65.8%)과 본투표율(42.43%)이 서울 전체 평균인 63.6%와 39.64%를 상회한다는 점도 선제적 대응이 필요했음을 시사한다. 특히 용지 부족 사태를 겪은 동들은 송파구 평균보다도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며 지역 내에서도 투표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들로 분류된다. 잠실4동의 총투표율은 78.04%에 달해 서울 평균을 14%포인트 이상 앞질렀으나 선관위의 인쇄 지침은 이러한 격차를 반영하지 못했다.

인천 연수구 동춘1동과 송도5동 역시 본투표율이 50%를 넘지는 않았으나 지역 평균을 크게 웃돌며 용지 부족 사태의 가시권에 들어갔다. 연수구의 본투표율은 40.87%로 인천 평균인 36.42%보다 높았으며, 문제가 된 동들은 45%에서 47% 사이의 본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선관위가 제시한 50%라는 하한선이 지역별 변동성을 수용하기에는 지나치게 빠듯한 기준이었음을 방증한다.

전국적으로 투표용지가 부족해 추가 송부된 투표소는 67곳에 달하며, 실제로 용지가 바닥나 투표가 일시 중단된 곳만 22곳으로 확인됐다. 이 중 절반이 넘는 12곳이 송파구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은 특정 지역 선관위의 수요 예측 실패를 여실히 보여준다. 잠실7동 제2투표소의 경우 선거인 수가 3,856명이었으나 배정된 투표용지는 1,900매에 불과해 산술적으로도 본투표율 50%를 감당하기 불가능한 구조였다.

중앙선관위는 사태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현장 대응의 한계를 언급하며 행정적 변명을 내놓았다. 선관위 관계자는 브리핑을 통해 "송파구 전체로는 투표용지가 부족하지 않지만, 관내 146개 투표소마다 투표자 수에 편차가 있어 일부 지역의 용지가 모자랐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는 결국 선관위가 보유한 과거 데이터를 행정 실무에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음을 자인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사전투표율의 변동성으로 인해 본투표 용지 인쇄량을 정밀하게 산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동정론도 제기된다. 사전투표가 정착되면서 본투표로 향하는 유권자의 흐름을 예측하는 것이 과거보다 복잡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특정 지역의 본투표 집중 현상이 10년 가까이 반복되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비판적 시각은 선관위의 관리 부실을 정당화하기에 부족하다.

시장 경제의 효율성과 법치 행정의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사태는 공공 서비스 공급자가 수요 분석에 실패하여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사례로 평가된다. 투표권 행사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행정은 가장 보수적이고 철저한 데이터 기반 위에 서 있어야 한다. 4만 장의 용지가 창고에 남았음에도 투표소 현장에서 유권자들이 발을 돌려야 했던 상황은 국가 행정의 신뢰도를 실추시키는 중대한 결함이다.

향후 선거에서는 획일적인 인쇄 비율 지침을 폐기하고 각 투표소 단위의 정밀한 수요 예측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선거 행정은 단 1%의 오차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무결성의 영역이다"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데이터에 기반한 유연한 자원 배분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과거의 투표 경향을 무시한 행정 편의주의가 지속되는 한, 제2의 투표 중단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선관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국 투표소별 투표 성향을 전수 조사하여 인쇄 및 배분 매뉴얼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단순한 산술적 평균치에 의존하는 행정에서 벗어나 지역별 특수성을 반영한 맞춤형 선거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민주주의의 비용을 아끼려다 더 큰 사회적 비용과 혼란을 초래한 이번 사례를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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