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아리랑' 선율 지웠더니… '절망의 벽' 허문 '발레 아리랑'의 반전

고진아 기자

어제(6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거대한 절망의 벽이 균열하고 무너져 내리는 순간, 익숙한 아리랑 선율 없이도 그 어떤 아리랑보다 진한 민족의 한과 연대의 힘을 담아낸 '발레 아리랑'이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2026 대한민국발레축제 기획공연으로 지난 6일 막을 올린 '발레 아리랑'은 절망의 벽 앞에 선 인간의 좌절과 상실감을 넘어, 서로의 손을 잡고 연대하여 일어서는 저항과 치유의 과정을 그려냈다. 특히 제목과는 달리 전통 아리랑 선율을 배제하고 '민족 정서'를 춤으로 표현하며 새로운 아리랑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다.

안무가 최수진과 이루다가 공동 창작한 이 작품은 총 2부로 구성됐다. 1부 '절망'은 최수진 안무로 펼쳐졌다. 삼베옷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은 두 명의 무용수는 위태롭고 섬세한 동작으로 개인의 깊은 좌절감을 표현했다. 무대 스크린의 거대한 벽 앞에서 무력하게 쓰러지고 저항하는 몸짓은 관객들에게 비극적인 현실과 마주한 개인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연대의 시작을 암시했다.

이어지는 2부 '연대'는 이루다 안무로 절망의 벽을 뚫고 나아가는 집단적 연대의 힘을 그려냈다. 흰옷을 입은 무용수들의 단체 군무는 강강술래를 연상시키며 한풀이와 신명의 정서를 담아냈다.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따라 무대 스크린의 벽은 서서히 균열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격렬한 몸짓 속에 무너져 내리며 집단적 저항과 치유의 절정을 선사했다.

'아리랑' 선율 지웠더니… '절망의 벽' 허문 '발레 아리랑'의 반전
[사진=연합뉴스]

음악과 미디어 협업은 무토(MUTO)가 맡아 파격적인 시도를 선보였다. 거문고와 태평소 등 국악기 선율에 전자음악을 혼합하여 작품의 현대적 정체성을 확립했다. 저음부 거문고와 휘모리장단 장구 리듬은 1부의 좌절감을 심화했고, 2부에서는 태평소의 고음과 전자음악이 어우러져 희망을 향한 움직임에 강력한 에너지를 부여하며 한국적 정서를 동시대적으로 구현했다는 평이다.

'발레 아리랑'은 무조건적인 승리로 끝나지 않아 더욱 깊은 메시지를 남겼다. 벽을 부순 후에도 무대 위 무용수들은 고요히 엎드려 있었고, 붉은 옷을 입은 무용수의 마지막 손짓은 '순환 속의 희망'을 암시하며 여운을 더했다. 이루다 안무가는 '벽을 깨부순 이후에도 인간은 또 다른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 마련'이라며, 작품이 지향하는 깊이 있는 철학적 결말을 설명했다.

'발레 아리랑'은 절망을 재해석하고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인간 본연의 강인한 의지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다양한 '벽' 앞에서 연대와 치유의 메시지가 필요한 시점에 깊은 성찰과 감동을 안겨준 이번 공연은 한국 발레의 창의성과 예술적 깊이를 보여준 사례로서 앞으로의 국내 창작 발레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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