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 불완전판매에 따른 최종 과징금 확정이 당초 예상보다 지연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과 금융권의 자본 여력을 고려한 정책 기조 사이에서 수위 조절을 논의하고 있다. 최근 금융사를 상대로 한 징계 불복 소송에서 당국이 잇달아 패소한 점도 최종 결정의 변수로 작용하는 양상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KB국민, 신한, 하나, NH농협, SC제일은행 등 5개 주요 시중은행의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에 대한 제재 안건을 검토 중이다. 2026년 4월 19일 기준, 금융위원회는 오는 29일로 예정된 정례회의에 해당 안건을 상정할지 여부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사실관계 확인과 법리적 쟁점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신중론이 대두되면서 이달 내 최종 결론 도출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 4조 원대에서 수천억 원까지 축소 가능성 제기
금융감독원이 당초 산정했던 은행권 과징금 규모는 약 4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은행권에 사전 통보된 금액은 절반 수준인 2조 원으로 감경되었으며, 올해 2월 의결을 거쳐 금융위원회로 넘어온 최종 제재안은 1조 4,000억 원 규모까지 낮아진 상태다. 논의가 길어질수록 이 금액은 수천억 원대까지 추가로 대폭 감경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러한 과징금 조정의 법적 근거는 2021년 제정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에 있다. 개정된 금소법에 따르면 금융위는 해당 금융사의 피해 구제 노력과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과징금을 최대 75%까지 감경할 수 있는 재량권을 가진다. 금융사들이 사후 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선 점이 감경 사유로 반영될 경우, 조 단위의 과징금이 수천억 원 수준으로 내려앉는 것은 법리적으로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다만 첫 조 단위 과징금이라는 상징성과 향후 불완전판매 제재의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당국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 잇단 법원 패소에 따른 당국의 법리적 부담 가중
금융위원회의 장고 뒤에는 최근 잇따른 사법부의 판결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가상자산 거래소 두나무가 제기한 영업 일부정지 처분 취소 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또한 라임 사태와 관련하여 중징계를 받았던 박정림 전 KB증권 사장이 제기한 직무정지 처분 취소 소송에서도 법원은 금융위의 처분이 무리했다는 취지로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처럼 금융당국의 징계가 법원에서 연달아 뒤집히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홍콩 ELS 제재 역시 정교한 법리 검토 없이는 향후 소송전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당국 관계자는 무리한 제재라는 비판을 피하고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합리적인 수위를 찾는 것이 현재 가장 큰 과제라고 전했다. 금감원이 넘긴 제재안이 과도하다는 인식이 확산할 경우 금융위의 정무적 판단 부담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 생산적 금융 기조와 은행권 줄소송 우려의 충돌
정부의 정책 기조와의 정합성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거액의 과징금이 부과될 경우 금융사의 자본 여력이 급격히 위축되어 민간 금융이 주도하는 생산적 금융 정책의 동력이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금융위는 자본규제 개편을 통해 제재 대상 은행이 받는 자본 비율상의 불이익 기간을 기존 10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해두었으나, 은행권의 불만은 여전하다.
은행권은 과징금이 대폭 낮아지더라도 소송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과징금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주주들로부터 경영진이 배임 혐의로 피소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주주 가치 훼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라도 은행들이 줄소송에 나설 확률이 높다는 분석이다. 결국 소비자 보호와 금융 시스템의 안정, 그리고 법적 정당성이라는 세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금융위의 최종 선택이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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