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휠체어 진입 불가한 1m 미만 탈의실

이성경 기자
휠체어 진입 불가한 1m 미만 탈의실
©연합뉴스

 

의류 매장 내 휠체어 사용자의 탈의실 접근성이 심각한 물리적 장벽에 가로막혀 사실상 소비 권리가 박탈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법상 편의시설 의무화 대상에서 탈의실이 제외되어 있어 장애인들은 기업의 선의에만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다. 대형 유통 시설조차 좁은 통로와 부적절한 설비로 인해 휠체어 사용자의 의복 착용 시도가 원천 봉쇄되는 현장이 포착됐다.

의류 쇼핑의 가장 기본적인 과정인 제품 착용이 휠체어 사용자들에게는 넘기 힘든 거대한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소재의 한 대형 쇼핑몰을 현장 점검한 결과, 건물 진입 단계부터 내부 시설 이용에 이르기까지 장애인을 위한 배려는 극히 미비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6년 4월 18일 오전, 송석호 활동가와 동행하여 확인한 대형 의류 매장의 환경은 비장애인 중심의 설계로 일관되어 있었다. 쇼핑몰 입구의 무거운 수동 출입문은 활동지원사의 도움 없이는 휠체어 사용자의 진입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매장 내 동선 역시 휠체어의 회전 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구성되어 있었다.

▲ 물리적 장벽에 가로막힌 이동권과 의류 매장의 실태

국내외 유명 SPA 브랜드가 입점한 대형 매장 내부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휠체어 사용자의 눈높이에서는 손이 닿지 않는 높은 위치에 진열된 의류가 대다수였으며, 옷을 선택하더라도 이를 갈아입어 볼 수 있는 탈의실(피팅룸)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대기줄을 관리하기 위해 설치된 차단봉은 휠체어의 통행을 가로막는 1차적 장애물이었고, 이를 제거하더라도 탈의실의 물리적 규격이 진입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대다수 탈의실의 문폭은 1m 미만으로 설계되어 전동 휠체어가 안정적으로 진입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겨우 내부로 진입하더라도 휠체어와 사용자의 신체가 차지하는 공간 탓에 여닫이문을 닫을 수 없는 구조적 결함이 발견되었다.

현장에서 만난 송석호 활동가는 휠체어를 이용한 이후 탈의실을 정상적으로 이용해 본 경험이 단 한 번에 불과하다고 토로했다. 일부 매장에는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전용 탈의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으나, 관리는 소홀했다. 휠체어를 타지 않는 일반 고객들이 해당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경우가 빈번했으며, 공간의 크기 또한 바지를 갈아입는 등 복잡한 동작을 수행하기에는 여전히 협소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물리적 제약은 결국 장애인들로 하여금 매장 한편에서 바지를 허리에 대보는 식으로 치수를 가늠하게 만드는 등 인권과 소비권의 동시 침해로 이어지고 있다.

▲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의 사각지대와 제도적 한계

이러한 현상의 근저에는 법적 강제성이 결여된 제도적 사각지대가 자리 잡고 있다. 현행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편의법)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할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법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담은 시행령은 경사로, 화장실, 승강기 등 기초적인 건축 설비에만 집중되어 있다. 의류 매장의 필수 시설인 탈의실이나 분장실 등에 대한 세부적인 설치 기준과 의무 조항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장애인 편의 시설 확충을 외면하거나, 오직 기업의 '선의'에 기반한 선택적 배리어 프리만을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을 비롯한 관련 단체들은 지난 2021년, 미국의 장애인법(ADA)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장애인용 탈의실 규정을 시행령에 명문화할 것을 보건복지부에 강력히 제안한 바 있다. 미국의 경우 일정 규모 이상의 의류 매장에는 반드시 휠체어 진입과 회전이 가능한 탈의실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보건복지부는 영세 소상공인의 경제적 부담과 공간 확보의 어려움을 사유로 해당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결과적으로 대형 유통사들조차 장애인 편의 시설 구축에 손을 놓게 만드는 면죄부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 배리어 프리 의무화 확대를 위한 법적 개선 방향

법조계와 장애인 인권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실효성 있는 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익법단체 두루의 한상원 변호사는 현재의 추상적인 법 규정이 장애인의 실질적인 '입어볼 권리'를 방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모든 소상공인에게 일괄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일정 면적 이상의 대형 의류 매장이나 대형 쇼핑몰부터 단계적으로 장애인용 탈의실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식의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이는 영세 사업자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장애인의 기본권인 소비권을 점진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매장 직원들의 인식 개선과 서비스 가이드라인 마련도 병행되어야 한다. 송석호 활동가는 탈의실 이용을 시도할 때 마주하는 직원의 난감한 표정과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물리적 장벽보다 더 큰 심리적 위축을 불러온다고 설명했다. 장애인이 소비자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은 법적 강제성과 사회적 인식 변화가 맞물릴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기업의 자율적 선의에만 기대기에는 장애인이 겪는 일상의 불편과 권리 침해의 정도가 한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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