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악필 증가로 인한 시험 감점 속출

이겨례 기자
악필 증가로 인한 시험 감점 속출
©연합뉴스

 

디지털 기기 보급으로 손글씨 사용 빈도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학생들의 필기 가독성 저하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는 악필로 인한 서술형 답안 감점 사례가 잇따르고 있으며, 이는 학부모와 교육 현장의 새로운 고민거리로 부상했다. 손글씨 사용 기회가 실종된 디지털 세대를 중심으로 필사 열풍과 전문 교정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등 아날로그적 소통 방식의 가치가 재조명되는 양상이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된 교육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연필을 쥐고 글씨를 연습할 기회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과거 교과서와 공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학습 활동이 태블릿 PC와 다양한 교육용 소프트웨어로 대체되면서 나타난 결과다. 실제로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인 맘카페 등에서는 자녀의 악필 문제로 고민하는 학부모들의 글이 꾸준히 게시되고 있다. 한 학부모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본인의 글씨를 스스로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가독성이 떨어진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에 대해 다른 학부모들은 고등학생 자녀가 악필 때문에 서술형 시험에서 대규모 감점을 당해 결국 정시 준비를 위해 자퇴를 선택한 극단적인 사례까지 공유하며 글씨 교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디지털 기기 보급과 초등 고학년 손글씨 실종 현상

교육 현장의 실태를 살펴보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손글씨 활동이 유지되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디지털 기기 의존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뚜렷하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2학년 교사 이모 씨는 학교 현장에서 3학년부터 태블릿을 활용한 에듀테크 수업이 본격적으로 도입된다고 설명했다. 학교에 따라 모든 수업을 디지털 기기로 해결하는 경우도 있어, 아이들이 연필을 쥐고 글씨를 쓰는 활동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눈에 띄게 줄어든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중고등학생들은 필기나 서술형 시험에서 큰 난관에 부딪힌다. 중학교 2학년 A군은 수업 시간에 직접 적은 프린트물을 나중에 복습할 때 본인조차 해독하지 못하는 상황을 겪고 있으며, 고등학교 1학년 강모 군은 시험 시간에 쫓겨 글씨를 휘갈겨 쓰다 보니 선생님이 답안을 오독하여 부분 감점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대학 입시 과정에서도 손글씨는 여전히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광학마크인식(OMR) 방식이어서 직접적인 글씨 쓰기 비중이 낮지만, 수시 전형의 핵심인 논술 시험은 상황이 다르다. 2023학년도 대입을 준비했던 대학생 조모 씨는 논술 학원 수강 당시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강사로부터 글씨 교정을 강력히 권유받았다. 조 씨는 원고지 형태의 답안지에 1,500자에서 2,000자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을 손으로 적는 과정에서 평소 경험해보지 못한 신체적 피로와 정자체 유지의 어려움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이는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진 세대에게 긴 호흡의 수기 작성이 얼마나 생경하고 고통스러운 작업인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 대학가 채점 난항에 등장한 아날로그 필기 부활

학생들의 글씨 가독성 저하는 대학 교육 현장의 채점 방식에도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김기환 교수에 따르면, 변호사 시험이 컴퓨터 기반 시험(CBT) 방식으로 전환됨에 따라 로스쿨 내부 시험 역시 타자 입력 방식으로 바뀌는 추세다. 수기 답안지를 제출하던 2~3년 전만 하더라도 학생들의 느린 필기 속도와 악필로 인해 채점관들이 내용을 파악하는 데 막대한 지장을 겪었기 때문이다. 대학생 최모 씨는 일상에서 손글씨를 쓸 일이 거의 없어 교정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오직 시험 답안지를 작성할 때만 교수님이 알아보실 수 있도록 특정 부분만 수정하는 임시방편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흐름에 반기를 들고 의도적으로 아날로그 필기를 유도하는 대학 강의도 존재한다. 중앙대학교 4학년 B씨가 수강하는 한 강의는 노트북을 통한 타자 필기를 금지하고 오직 손필기만을 허용한다. 해당 교수는 타자로 글을 치면 실시간 편집이 가능해 머릿속으로 글을 구조화하는 연습이 부족해진다는 점을 금지의 이유로 들었다. 비록 태블릿 펜을 이용한 디지털 필기는 허용되지만, 이러한 규칙의 취지에 공감해 수강생의 약 절반 정도는 종이 공책과 필기구를 지참해 직접 손으로 적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이는 디지털 도구가 학습의 편의성을 제공할 수는 있으나 사고의 논리적 구조화 측면에서는 아날로그 방식이 여전히 우위에 있음을 시사한다.

▲ 악필 대회부터 온라인 교정까지 이어진 손글씨 열풍

손글씨의 희소성이 높아지면서 사회 전반에서는 악필을 소재로 한 이색 이벤트나 바른 글씨 쓰기에 대한 열풍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악필 또한 개인의 삶과 감정이 담긴 하나의 특징으로 인정하자는 취지의 악필 대회가 개최되어 대중의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글씨를 못 쓰는 참가자에게 상금을 수여하는 등 역설적인 마케팅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벤트와는 별개로, 정갈한 글씨를 갖추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은 3040 세대를 중심으로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당시 헌법 전문이나 탄핵 결정문을 손으로 직접 옮겨 적는 필사 유행이 일어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글씨 교정 수요는 전문적인 온라인 프로그램의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 4년째 교정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김경옥 씨는 수강생 중 교사나 간호사처럼 업무상 수기 기록이 잦은 전문직은 물론, 일반 직장인과 주부들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강생들은 단순히 예쁜 글씨를 넘어 공적 서류 작성 시의 자신감 회복과 다이어리 기록을 통한 정서적 만족감을 주요 성과로 꼽는다. 디지털 기기가 모든 기록을 대체할 것 같았던 시대에, 손글씨는 이제 개인의 지적 수준과 성실함을 대변하는 새로운 경쟁력이자 자존감을 높이는 도구로 재발견되고 있다.

저작권자 © 재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악필#증가로#인한#시험#감점
악필 증가로 인한 시험 감점 속출 : 정치/사회 : 재경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