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을 위해 평생을 바친 미국의 인권운동가 패리스 하비 목사가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신속히 전파하고 미 의회에서 계엄군의 탄압을 증언하는 등 한국 현대사의 고비마다 민주화 세력의 든든한 우군 역할을 수행했다. 북미와 유럽을 잇는 인적 네트워크를 가동해 군사정권의 정보 차단을 무력화한 공로는 오늘날 한국 인권사의 중대한 이정표로 기록된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요양원에서 투병 중이던 패리스 하비(Pharis Harvey) 목사가 2026년 4월 16일 향년 91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935년생인 고인은 1960년대와 70년대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전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며 한국의 열악한 인권 상황에 깊은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은 군사 독재 정권 하에서 언론 자유가 억압되고 민주화 운동가들에 대한 탄압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고인은 이러한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국제사회의 양심을 깨우는 메신저 역할을 자처하며 한국 민주화 여정에 깊숙이 발을 들였다.
▲ 5·18 민주화운동의 국제적 공론화와 진상 규명 주도
고인의 가장 독보적인 공적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것이다. 당시 신군부에 의해 모든 정보가 철저히 차단된 상황에서 고인은 북미한인인권위원회(NACHRK)의 실무 책임자로서 정보의 허브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국내외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하여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혈 진압의 실상을 수집했고,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소식지는 북미와 유럽 지역으로 급속히 전파됐다. 이는 당시 국내 언론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극복하고 국제사회가 한국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고 고인은 실질적인 조사와 대응책 마련에도 앞장섰다. 5·18 사건 직후 미국인 의사를 포함한 자체 조사팀을 현장에 파견하는 과정에 관여했으며, 이들이 작성한 상세 보고서를 미 국무부에 전달해 사건의 진상 규명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러한 활동은 미국 정부가 한국의 상황을 단순히 내정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외교적 대응을 검토하게 만드는 압박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고인이 구축한 국제 연대의 틀은 광주의 고립을 막고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세계적 지지를 얻는 토대가 됐다.
▲ 김대중 전 대통령 구명운동과 미 의회 증언의 역사적 파장
하비 목사의 활동은 1981년 미국 의회에서 열린 청문회를 통해 정점을 찍었다. 그는 미 하원 국제관계 및 인권 소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군의 잔혹한 유혈 진압 실태를 낱낱이 고발했다. 특히 당시 베일에 싸여 있던 삼청교육대의 인권 침해 사례와 노동계 및 언론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구체적인 증거와 함께 증언했다. 이는 미국 의회가 한국의 인권 문제를 국가적 차원의 주요 의제로 다루기 시작한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고인의 증언은 미국 정치권 내에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여론을 형성하는 데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고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범들의 구명운동에도 헌신적이었다. 1979년 지미 카터 행정부가 인권 외교를 표방할 당시, 한국 내 인권 상황에 대한 상세 보고서와 함께 석방이 시급한 정치범들의 명단을 전달하며 외교적 압박을 요청했다. 이는 훗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형 선고를 받고 위기에 처했을 때 국제사회가 구명 목소리를 높이는 데 있어 기초 자료가 되었다. 고인은 선교사라는 신분을 활용해 권력의 감시를 피해 가며 민주화 인사들과 소통했고, 그들의 목소리를 세계로 연결하는 '민주주의의 안테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 한국 민주주의 기여 공로와 인도주의적 헌신의 재조명
정부는 이러한 고인의 평생에 걸친 헌신을 기려 지난 2020년 한국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다. 이는 외국인 인권운동가가 한국 현대사의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함께하며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점을 국가 차원에서 공식 인정한 사례다. 고인은 단순히 관찰자로서의 활동에 머물지 않고, 한국의 민주화 세력이 고립되지 않도록 국제적인 방어막을 형성해 준 실천가였다. 특히 5·18 해외 기록물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고인이 남긴 방대한 자료와 네트워크가 한국 민주주의의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핵심적이었다고 분석한다.
전문가들은 하비 목사의 별세를 계기로 1980년대 국제 연대의 역사를 재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이 지역적 사건을 넘어 세계적인 인권 운동의 흐름으로 편입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고인과 같은 헌신적인 인물들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고인이 생전 보여주었던 인도주의적 가치와 민주주의를 향한 연대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인권이 위협받는 지역에 중요한 교훈을 남기고 있다. 고인의 유해는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 절차를 마친 뒤 영면에 들 예정이며, 한국 사회는 그가 남긴 민주주의의 유산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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