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 증권사인 종합금융투자사업자들이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실물경제의 마중물인 모험자본에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모험자본 공급 규모는 당국의 가이드라인을 크게 웃돌며 생산적 금융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양적 성장에 발맞춰 유동성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 시스템의 질적 고도화를 강력히 주문하고 나섰다.
국내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이하 종투사)들이 올해 1분기 동안 중소기업 및 벤처투자 등 모험자본 시장에 공급한 자금이 10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대형 증권사들이 단순한 중개 업무를 넘어 기업금융과 산업 자금 공급이라는 투자은행(IB) 본연의 기능을 강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IMA)를 통한 자금 조달 규모가 급격히 확대되면서 실물경제로 유입되는 자금의 파이 자체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발행어음과 IMA 조달 자금의 가파른 성장세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7개 종투사의 올해 1분기 모험자본 공급 규모는 총 9조 8,7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IMA와 발행어음을 통해 조달한 전체 금액인 57조 2,000억 원의 17.3% 수준이다. 당초 금융당국이 설정한 올해 규제 비율인 10%를 7.3%포인트 상회하는 수치로, 종투사들이 적극적인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특히 발행어음 시장의 성장세가 눈부시다. 발행어음 조달 금액은 2020년 말 15조 6,000억 원 수준이었으나, 올해 3월 말에는 54조 4,000억 원으로 약 3.5배 급증하며 종투사의 핵심 자금 조달 수단으로 안착했다.
지난해 처음 인가된 종합투자계좌(IMA) 역시 시장에 빠르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작년 말 1조 2,000억 원에 불과했던 IMA 조달액은 올해 3월 말 2조 8,000억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이러한 자금력의 확대는 종투사가 자기자본뿐만 아니라 고객으로부터 조달한 자금을 활용해 혁신 기업에 대한 대출, 지분 투자, 사모펀드(PEF) 출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모험자본을 공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현재 당국은 2028년까지 전체 운용 자산 중 조달액의 25%를 국내 모험자본에 의무적으로 공급하도록 유도하고 있어, 향후 공급 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하지만 자본 공급의 양적 확대가 반드시 건전성 지표의 개선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금융감독원은 21일 7개 종투사 운용 및 감사 부문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외형 성장 뒤에 가려진 잠재적 리스크를 경고했다. 서재완 금감원 부원장보는 금융시장에서 종투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해진 만큼, 투자자 보호와 리스크 관리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시장 상황이 급변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유동성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현재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 건전성 강화를 위한 금융당국의 유동성 관리 주문
금감원은 구체적으로 발행어음 운용 자산의 유동성 관리를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발행어음은 만기가 정해진 수신 상품의 성격이 강해 시장 금리 변동이나 신용 이벤트 발생 시 자금 회수 요청이 집중될 수 있다. 이에 대비해 운용 자산의 만기 구조를 다변화하고 즉시 현금화가 가능한 고유동성 자산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IMA의 경우 만기 전 고객이 자금을 회수하고자 할 때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자산 유동성을 사전에 철저히 검토하고 관리할 것을 당부했다.
리스크 관리의 칼날은 기업신용공여 분야로도 향하고 있다. 금감원은 종투사의 기업 대출 심사 기준을 강화하고 신용리스크 관리 수준을 높이기 위해 '기업 신용공여 관련 모범규준'을 마련해 배포할 계획이다. 이는 개별 증권사의 자의적인 심사 기준에서 벗어나 표준화된 리스크 평가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부실 대출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아울러 최근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사모대출펀드(PDF)와 관련해서도 환매 동향과 예상 손실 규모를 투자자들에게 투명하게 안내하고 선제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하도록 지시했다.
이러한 당국의 주문은 종투사가 단순히 자금을 중개하는 역할을 넘어, 투자 결과에 책임을 지는 선진국형 투자은행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고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기존 수익 모델의 리스크가 부각되는 시점에서, 모험자본 공급이라는 본연의 업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내부통제 역량을 증명해야 하는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종투사들은 이번 간담회에서 중소·벤처 투자 확대를 통해 생산적 자금 공급을 주도하는 한편, 판매 및 운용 단계별 내부통제 현황을 원점에서 재점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기업금융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지원과 향후 과제
향후 금융당국은 종투사의 운용 현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하여 잠재적인 위험 요인을 발굴하고, 이를 바탕으로 모험자본 공급 관련 제도를 보완해 나갈 예정이다. 현재의 규제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공급된 자금이 실제로 유망 혁신 기업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발생한 수익이 투자자들에게 공정하게 배분되고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방침이다. 이는 단순히 수치상의 규제 비율 달성을 넘어 실질적인 '생산적 금융'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종투사 입장에서는 당국의 규제 강화가 부담이 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특히 기업 신용공여 모범규준이 시행되면 자본 효율성이 증대되고 리스크 대비 수익성이 우수한 자산으로의 포트폴리오 재편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의 전문가들은 종투사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뿐만 아니라 리스크를 정교하게 계량화하고 관리하는 소프트웨어 측면의 혁신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종투사의 모험자본 공급 확대는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살리는 핵심 동력이다. 2028년까지 설정된 25%의 공급 목표치는 종투사가 단순한 금융사를 넘어 국가 산업 정책의 파트너로서 기능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번 금감원과의 간담회는 양적 팽창에 따른 성장통을 예방하고, 보다 단단한 금융 시스템 위에서 모험자본이 흐를 수 있도록 물길을 정비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종투사들이 리스크 관리와 투자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 수 있을지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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