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합병 시 합병가액을 주가로만 산정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자산과 수익 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은 대주주의 이해관계에 따른 비효율적 합병을 방지하고 소수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오는 14일 전체회의를 열어 해당 법안을 최종 의결할 예정이다.
기업 합병 시 합병가액을 결정할 때 주가 외에도 자산 가치와 수익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제도적 기틀을 마련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2일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열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했다. 이번 조치는 시장 가격에만 의존하던 기존 합병가액 산정 방식이 소수 주주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지적을 수용한 결과다.
현행법상 상장법인과 계열회사 간 합병가액은 시장에서 형성된 주식가격을 기준으로만 산정해 왔다. 이러한 제도는 최대주주가 합병 양사의 지분을 동시에 보유한 교차주주일 경우 자신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부당한 합병 비율을 유도할 유인이 컸다. 특히 주가가 저평가된 우량 기업의 주주들이 합병 과정에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적 모순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과거 두산그룹이 추진했던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철회 사례는 현행 제도의 맹점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당시 두산 측은 시가를 기준으로 합병 비율을 정했으나 수익성이 높은 밥캣 주주들의 반발과 금융감독원의 압박에 부딪혀 결국 합병안을 자진 철회했다. 적자 기업이라도 주가가 높으면 알짜 기업을 헐값에 인수할 수 있다는 비판이 시장 전반에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합병가액 결정 시 시장 주가 외에도 다양한 내재 가치 요소를 반영할 수 있게 되어 기업 가치 평가의 객관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이는 자본시장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기업 경영의 효율성을 시장 질서 내에서 바로잡으려는 법치주의적 접근으로 풀이된다. 상장사들이 합병 과정에서 소수 주주의 이해관계를 보다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정무위 소위는 금융 범죄 대응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도 함께 의결했다. 보이스피싱 가담자가 타인의 범죄를 규명하는 데 협조할 경우 형량을 감경해 주는 리니언시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골자다.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금융 사기의 특성을 고려하여 내부 제보를 유도함으로써 범죄 조직의 실체를 빠르게 파악하겠다는 전략이다.
보험업계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 역시 여야 합의로 소위 문턱을 넘었다. 보험사기나 유사수신행위 등 관련 법률을 위반한 전력이 있는 자는 보험설계사나 법인 보험대리점 임원으로 등록할 수 없도록 자격 제한을 강화했다. 부적격자의 시장 진입을 원천 차단하여 건전한 보험 모집 환경을 조성하고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려는 취지다.
일각에서는 합병가액 산정 방식의 유연화가 오히려 산정 과정의 자의성을 높여 또 다른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기업의 자산 및 수익 가치 평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합병 절차가 지연되거나 소송 리스크가 커져 경영 효율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시장의 자율적 조절 기능을 법적 규제로 과도하게 제약하는 것이 아니냐는 신중론도 여전히 존재한다.
금융권의 한 전문가는 "합병 비율의 공정성 확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필수적 과제"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제도 정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장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세부적인 가치 평가 가이드라인이 신속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입법이 소수 주주 보호라는 자본시장의 대원칙을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의 금융 분야 공약이었던 서민금융지원법 개정안은 재원 마련 방식 등에 대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의결이 보류됐다. 서민금융안정기금 신설을 골자로 하는 이 법안은 향후 여야 간 추가 논의를 거쳐 처리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위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역시 오는 14일 오전 법안소위를 다시 열어 심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오는 14일 오후 전체회의를 소집하여 이날 소위를 통과한 법안들을 최종 처리할 계획이다. 이번 입법 과정은 시장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금융 범죄에 엄정히 대응하려는 국회의 정책적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법안이 본회의를 최종 통과하면 상장사 합병 지형의 변화와 함께 금융 소비자 보호 체계가 한층 견고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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