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원시적 약탈금융' 상록수 23년 만에 청산… 11만 명 8450억 채권 전량 매각

윤근일 기자
'원시적 약탈금융' 상록수 23년 만에 청산… 11만 명 8450억 채권 전량 매각
©연합뉴스

 

과도한 장기 추심으로 '약탈적 금융' 논란을 빚은 민간 배드뱅크 상록수가 8,450억 원 규모의 채권을 전량 매각하고 설립 23년 만에 전격 청산한다. 이번 결정으로 장기 연체에 시달리던 11만 명의 채무자가 추심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며, 정부는 유사 유동화회사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금융 질서 재확립에 나선다.

민간 배드뱅크 상록수가 보유한 8,450억 원 규모의 장기 연체 채권을 처리하고 조직을 해체하는 사실상의 청산 절차를 밟기로 확정했다. 금융위원회는 신진창 사무처장 주재로 상록수 관련 9개 금융사를 정부서울청사로 긴급 소집하여 이 같은 방침을 결정했다. 이번 조치는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상록수의 장기 추심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한 직후 이루어진 전격적인 후속 대응이다. 정부는 민간 영역에서 방치된 장기 연체 채권이 서민 경제의 활력을 저해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신속한 정리를 단행했다.

금융당국과 합의를 마친 상록수 사원사 9곳은 보유 채권을 최단 시일 내에 새도약기금과 캠코에 일괄 매각하기로 뜻을 모았다. 회의에 참여한 금융사는 하나은행, 국민은행, 중소기업은행을 비롯해 신한카드, KB국민카드, 우리카드 등 주요 은행과 카드사들이 포함됐다. 또한 유에셋대부, 카노인베스트먼트, 나이스제삼차 등 대부 및 투자 관련 회사들도 채권 매각과 청산 절차에 동참하기로 했다. 이들 기관은 상록수 설립 이후 지속해온 추심 행위를 전면 중단하고 채무자들의 신속한 재기를 지원하는 데 협력할 방침이다.

상록수는 지난 2003년 카드대란 당시 발생한 대규모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채무자의 재기를 돕기 위해 설립된 민간 배드뱅크다. 그러나 설립 취지와 달리 2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추심을 지속하며 관련 금융사들에 배당을 실시하는 등 영리적 행태를 보여왔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엑스(X)와 국무회의를 통해 상록수의 행태를 "원시적 약탈금융"이라고 규정하며 강도 높은 비판의 메시지를 냈다. 대통령은 특히 장기간 이어진 추심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수익이 금융사들의 배당으로 이어진 점을 심각한 시장 질서 왜곡으로 간주했다.

채권 매각은 채권의 성격과 연체 기간에 따라 맞춤형으로 진행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할 예정이다. 새도약기금의 매입 대상은 금융사가 보유한 연체 기간 7년 이상, 원금 5,000만 원 이하의 채권으로 한정하여 집중적인 구제에 나선다. 새도약기금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나머지 잔여 채권 역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매각하여 공적 관리에 편입시킨다. 이러한 이원화된 매각 구조를 통해 8,450억 원에 달하는 부실 채권이 민간의 손을 떠나 공적 정리 체계로 완전히 흡수될 전망이다.

이번 청산 결정으로 약 11만 명에 달하는 장기 연체 채무자들이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추심의 고통에서 해방될 것으로 보인다. 장기 연체 채권은 그간 채무자의 경제적 재기를 가로막는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하며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켜 왔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사례가 단발성 조치에 그치지 않도록 유동화회사 형태로 장기 연체 채권을 보유한 여타 회사들에 대해서도 전수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는 금융권 전반에 퍼져 있는 부당한 추심 관행을 뿌리 뽑고 포용적 금융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금융당국 수장인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신속한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이 위원장은 "금융위가 국무회의 이후 신속하게 움직였지만 23년을 견뎌낸 분들께는 너무 늦었다"며 "앞으로 포용금융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금융당국이 시장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금융 소비자 보호와 사회적 책임 이행을 최우선 가치로 두겠다는 선언으로 풀이된다. 금융위는 향후 전수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장기 연체 채권의 관리 및 소멸 시효 제도 전반을 점검할 계획이다.

다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거나 금융사의 정당한 채권 회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원칙 없는 채권 탕감이 반복될 경우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금융 시장의 신용 질서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20년이 넘는 장기 추심은 금융의 본질을 벗어난 비인도적 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하며, 이번 청산이 시장의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과정임을 분명히 했다.

향후 금융 시장은 민간 주도의 부실채권 정리 방식에서 벗어나 공적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상록수의 청산은 민간 배드뱅크 모델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며, 이는 향후 부실채권 관리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한다. 정부는 전수조사를 통해 파악된 유사 사례들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여 부당한 추심 행위를 차단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채권 유동화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채무자 보호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보완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재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원시적#약탈금융'#상록수#23년#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