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베이징 정상회담이 공동 기자회견이나 실질적 합의문 도출 없이 종료되며 양국의 위상 변화를 극명히 드러내다. 시 주석은 대만 문제를 향한 고강도 경고와 함께 미국과 대등한 지위를 요구하는 새로운 외교 노선을 천명한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협조를 구하는 수세적 입장을 보이다. 9년 전 2,500억 달러 규모의 경제적 성과를 거뒀던 과거와 달리 이번 회담은 글로벌 패권 지형의 구조적 재편을 확인하는 자리에 그치다.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성사된 미중 정상의 만남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나 실질적인 성과 면에서는 사실상의 빈손 회담이라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양 정상은 표면적으로 우호적인 기류를 연출하며 파트너십을 강조했으나, 회담 종료 후 각자 짧은 보도자료만을 배포하며 심화된 견해차를 노출하다. 이는 무역 협상과 대만 문제 등 핵심 난제들에 대해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했음을 시사하며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시진핑 주석이 제시한 중미 건설적 전략안정 관계라는 새로운 외교적 지위 설정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이는 평화공존을 넘어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하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되다. 시 주석은 회담 모두발언에서 투키디데스 함정을 언급하며 패권 경쟁에 따른 무력 충돌 가능성을 경고하는 등 공세적인 태도를 유지하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시 주석의 발언 수위는 과거 어느 때보다 직접적이고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다. 그는 대만 문제가 양국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임을 강조하며, 잘못 처리될 경우 양국이 충돌하거나 관계 전체가 위험한 지경에 처할 것이라고 단언하다. 이러한 발언은 미국을 향해 중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지 말라는 최후통첩성 성격을 띠며 회담장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의 이러한 공세적 발언에 대해 비공개 회담 중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다. 백악관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 관련 언급을 인지하지 않은 채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고 전하며, 이는 과거의 직설적인 대응 방식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러한 무반응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중동 전쟁과 에너지 수급 문제 해결이 시급한 미국의 현실적 한계를 반영하다.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외교적 협조가 절실한 상황에 처해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으로부터 이란 문제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끌어낸 것이 이번 방중의 유일한 성과라고 분석하다. 그러나 이는 중국이 에너지 수입과 국제 정세 관리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흔들 수 있는 강력한 레버리지를 확보했음을 의미하기도 하다.
경제 분야에서도 9년 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와는 판이한 결과가 나타나다. 2017년 당시 중국은 2,50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구매 계약을 선물로 안겼으나, 이번 회담에서는 구체적인 무역 진전이나 쇼핑 리스트가 발표되지 않다. 양측은 협력과 지지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치며 보호무역주의와 관세 전쟁의 불씨를 남겨두다.
로이터 통신은 이번 회담이 기존의 미중 질서가 붕괴되고 새로운 힘의 균형이 형성되는 과정에서의 진통이라고 진단하다. 미국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기 어려운 구조로 국제 정세가 재편되면서 중국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관세와 희토류 등 핵심 자원을 둘러싼 양국의 대립은 향후 글로벌 공급망의 재구조화를 가속화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회담의 무색무취한 결과가 오히려 대규모 충돌을 막기 위한 전략적 관리의 산물이라는 시각도 존재하다. 양국이 서로의 레드라인을 확인하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구체적 합의를 유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갈등 해결이 아닌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적 견해도 만만치 않다.
이희옥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이번 회담에 대해 양국이 긴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지점에서 이익의 균형을 찾으려 시도한 것이라고 평가하다. 그는 관세와 희토류를 교환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질서가 구축되었으며, 미국으로서도 일방적 승리를 거두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되었다고 분석하다. 이는 결국 시진핑 체제의 대내외적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로 이어지다.
전직 국가안전보장회의 당국자인 줄리안 게워츠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시각적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시간을 버는 전략을 취했다고 진단하다. 이를 통해 중국은 경제적 긴장 고조를 늦추는 동시에 자국의 국력을 신장시킬 기회를 확보하려 한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대외 정책이 국내 정치적 요인에 발목 잡힌 사이 중국은 전략적 공간을 넓히는 데 성공한 모양새다.
향후 미중 관계는 협력보다는 갈등을 관리하는 상시적 위기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되다. 양국은 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와 안보 현안을 놓고 치열한 수싸움을 이어가며 자국 중심의 진영 구축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특히 대만 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강경 기조가 상수로 자리 잡으면서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상시화될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이번 베이징 회담은 미국 주도의 일극 체제가 종언을 고하고 중국이 명실상부한 '빅2'로서의 위상을 굳히는 변곡점이 되다. 트럼프 대통령의 실용주의적 접근이 시 주석의 장기적 전략과 충돌하면서 미중 관계는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냉전의 시대로 접어들다. 시장은 이제 구체적인 합의보다는 양국의 미세한 정책 변화와 발언 수위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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