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중소기업 연체율 대기업의 8배 폭증... 대기업은 150조 현금 쌓으며 'K자 양극화' 심화

정휘 기자
중소기업 연체율 대기업의 8배 폭증... 대기업은 150조 현금 쌓으며 'K자 양극화' 심화
©연합뉴스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이 대기업보다 8배 이상 치솟으며 소상공인과 중소형 사업자의 경영난이 한계치에 다다랐다. 반도체 수출 호조를 맞은 대기업들은 150조 원이 넘는 단기 여유 자금을 은행에 쌓아두고 있으나, 고금리 기조 속에서 중소기업의 부실 채권 비율은 대기업의 두 배를 넘어서며 금융권 전반의 건전성 리스크로 전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내 금융 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자금 흐름 양극화가 극명하게 엇갈리며 실물 경제의 허리인 중소형 사업자들의 부실이 임계점에 도달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연체율은 0.65%를 기록한 반면 대기업은 0.08%에 그쳐 약 8배의 격차를 보였다. 이는 고금리 장기화와 내수 부진의 여파가 상환 능력이 취약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시사하다.

자산 건전성의 핵심 지표인 고정이하여신 비율 역시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압도하며 부실의 골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5대 은행의 중소기업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0.63%로 대기업의 0.31%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을 기록하다. 전체 원화 대출의 평균 고정이하여신 비율이 0.42%로 전월 대비 상승한 배경에는 중소기업의 급격한 건전성 악화가 자리 잡고 있다.

개별 은행 현장에서는 특정 중소업체의 거액 연체가 발생하며 지표가 이례적으로 치솟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A 은행의 경우 중소기업 고정이하여신 비율이 한 달 사이 0.17%포인트 급등하며 0.66%까지 올라선 것으로 나타나다. B 은행 또한 전체 기업 부실채권 비율이 0.50%를 기록하며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2020년 말 이후 5년여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다.

가계 대출 부문에서도 장기 연체 지표가 상승 곡선을 그리며 금융 소비자의 이자 부담이 현실화하고 있다. C 은행의 가계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0.39%를 기록하며 2016년 이후 약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차오르다. 전체 가계 연체율 또한 0.33%로 소폭 상승하며 다중채무자를 중심으로 한 신용 리스크가 전방위적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중소기업이 생존의 기로에 선 것과 달리 수출 대기업들은 사상 최대 규모의 현금을 은행에 예치하며 대조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5대 은행의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 잔액은 이달 중순 기준 157조 8,659억 원을 돌파하며 사상 처음으로 150조 원 시대를 열다. 이는 지난달 말보다 15조 원 이상 급증한 수치로 대기업들의 단기 유동성이 매우 풍부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다.

이번 현금 유입은 반도체 수출 호조에 따른 실적 개선이 법인 자금의 급격한 팽창을 견인한 결과로 분석된다. 대기업들은 금리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챙길 수 있는 MMDA를 자금 운용의 주요 창구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일반 요구불예금에서 증권사로 자금이 빠져나가는 '머니무브' 현상 속에서도 대기업 자금은 오히려 은행권으로 집중되는 특이 현상이 관찰되다.

은행권은 대기업의 풍부한 유동성 유입이 조달 비용 절감에는 도움이 되나 중소기업의 부실 심화는 장기적 부담 요인이라고 평가하다. MMDA는 금융채나 정기예금보다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은행의 단기 수익성 유지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하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연쇄 부실이 현실화할 경우 은행이 쌓아야 할 대손충당금 규모가 커져 경영 효율성을 저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장금리 상승으로 차주들의 이자 부담이 임계치에 도달하면서 부실채권이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라고 분석하다. 그는 이어 "특히 다중채무자를 중심으로 신용 리스크 위험이 확대되고 있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이다. 현장에서는 금리 인상이 지속될 경우 한계 기업의 도산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의 자금 쏠림 현상이 오히려 시장의 자금 순환을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다. 대기업이 쌓아둔 막대한 유동성이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은행 예치금에 머물 경우 실물 경제로의 낙수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시장 질서의 효율성 측면에서 볼 때 자금이 필요한 곳에 흐르지 못하는 불균형 구조는 경제 전체의 역동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다.

향후 통화 정책의 방향에 따라 자금 시장의 'K자형 양극화'는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준금리가 추가로 인상되거나 고금리 상태가 지속될 경우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금융 비용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반면 현금 동원력이 뛰어난 대기업은 우량한 재무 구조를 바탕으로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며 격차를 더 벌릴 것으로 보이다. 금융 당국의 세밀한 리스크 관리와 함께 기업 규모별 맞춤형 금융 지원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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