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33만원 생활비에 범죄자 낙인... 금융 소외 청년층의 '빈곤 악순환'

윤근일 기자
33만원 생활비에 범죄자 낙인... 금융 소외 청년층의 '빈곤 악순환'
©연합뉴스

 

금융 시장에서 소외된 저신용 청년층이 수십만 원의 생활비를 마련하려다 보이스피싱 등 중대 범죄의 공범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들이 얻은 실질적 수익은 33만 원에서 60만 원 수준에 불과하지만, 법원이 부과하는 벌금은 최대 15배에 달하는 500만 원까지 치솟아 가정 해체의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금융 시장에서 소외된 저신용 청년층이 수십만 원의 생활비를 마련하려다 보이스피싱 등 중대 범죄의 공범으로 전락하고 있다. 연합뉴스가 분석한 '장발장 대출' 신청서에 따르면, 이들이 얻은 실질적 수익은 수십만 원에 불과하지만 그 대가로 부과되는 벌금은 수익의 10배를 상회한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빈곤의 결과물로 해석된다.

29세 가장 장 모 씨의 사례는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불가능한 빈곤층이 직면한 가혹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장 씨는 본인과 자녀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불 유심 6개를 개통해 넘겨준 대가로 48만 원을 받았으나, 결과적으로 5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기초생활수급비로 가족을 부양하던 그에게 노역장 유치는 곧 가정이 해체되는 파국을 의미한다.

청년 빈곤층의 무너진 판단력은 돌봄 공백에 대한 공포와 결합하여 범죄의 유혹에 더욱 취약한 상태를 만든다. 23세 여성 이 모 씨는 영유아 자녀를 키우는 생활고 속에서 중고 사기와 대포통장 제공 등으로 33만 원을 벌었으나 보이스피싱 공범 혐의로 500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됐다. 그는 대출 신청서에 자신이 노역장에 갈 경우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절박한 호소를 남겼다.

다자녀 가구의 수급자들 역시 당장 입에 풀칠할 비용이 없어 범죄의 미끼를 무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여섯 명의 자녀를 둔 36세 이 모 씨는 지난 2022년 유심 6개를 업자에게 넘기고 60만 원을 받은 혐의로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정상적인 금융 대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신용도를 높여주겠다'는 불법 업자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갔다.

사법부는 범죄 수익의 규모나 피고인의 극심한 생활고와 관계없이 법리적 잣대를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판결문은 피고인이 범죄 연루 가능성을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금전적 대가에 이끌려 계좌나 유심을 제공했다는 점을 유죄의 근거로 삼는다. 법원은 범죄의 수단을 제공하는 행위 자체가 사회적 해악이 크다고 판단하여 엄중한 책임을 묻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법적 단죄와 벼랑 끝에 몰린 청년들의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 괴리를 지적한다. 이동우 장발장은행 대출심사위원(변호사)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신용이 낮아 대출받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접근이 강력한 미끼가 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필적 고의를 따지기에 앞서 이들이 처한 극한의 경제적 고립 상태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치주의 관점에서 범죄 수단 제공 행위에 대한 엄중한 처벌은 금융 시장의 질서 확립과 추가 피해 방지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다. 보이스피싱과 같은 민생 침해 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유심이나 계좌 명의를 대여하는 행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범죄의 도구가 되는 인프라를 차단하는 것은 법 집행의 효율성 측면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처벌 일변도의 대응은 오히려 빈곤층을 영구적인 범죄의 굴레에 가두고 사회적 비용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수십만 원의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장에 유치되는 청년 가장이 늘어날수록 이들에 대한 사회적 부양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된다. 법 집행의 엄격성을 유지하면서도 극단적 빈곤층을 위한 최소한의 금융 구제책이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단순한 처벌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저신용 청년층을 위한 실효성 있는 맞춤형 금융 정책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불법 사금융의 유혹에 노출되기 쉬운 취약 계층을 위해 긴급 소액 대출 제도를 확충하고 금융 교육을 강화하는 실무적 대안이 필요하다. 국가적 차원의 사회안전망 재점검을 통해 빈곤이 범죄로, 다시 더 깊은 빈곤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향후 정부와 금융 당국은 저신용 청년층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정책적 배려와 법적 엄정함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빈곤층의 무너진 신용이 범죄의 도구로 악용되지 않도록 선제적인 금융 보호 조치를 강화하는 것이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다. 법 집행의 무결성을 유지하면서도 인간 존엄의 최소치를 보장하는 지혜로운 정책 설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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