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시진핑의 등거리 외교가 베이징을 무대로 미중러 삼각 관계의 새로운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김영 기자
시진핑의 등거리 외교가 베이징을 무대로 미중러 삼각 관계의 새로운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 종료 나흘 만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국빈 초청하며 미러 사이의 전략적 균형을 꾀한다. 시진핑 주석은 일주일 간격으로 세계 양대 강국 정상과 연쇄 회담을 가짐으로써 국제 정세의 핵심 중재자로서의 위상을 강화하려 한다. 이번 회담은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중국이 확보할 수 있는 독자적 외교 공간의 범위를 결정짓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오는 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간 중국을 국빈 방문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번 방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박 3일간의 베이징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지 불과 나흘 만에 이루어지는 전례 없는 외교적 행보다. 중국은 불과 일주일 사이에 미국과 러시아라는 세계 정세의 두 축을 연달아 맞이하며 시진핑 주석의 외교적 영향력을 국제 사회에 각인시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방중 기간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의 포괄적 동반자 관계 및 전략적 상호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양국 정상은 회담 종료 후 공동성명과 정부 부처 간 협력 문서를 채택하여 중러 밀착의 건재함을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는 최근 종료된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 공유와 그에 따른 중러 전략 공조의 재확인에 집중될 전망이다.

러시아 측은 미중 관계의 미묘한 기류 변화가 자국의 외교적 입지에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푸틴 대통령이 방중 기간 중미 간 상호작용에 대해 중국 측과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낼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심화된 자국의 대중 의존도가 외교적 고립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상하이 국제관계학자 선딩리는 싱가포르 연합조보와의 인터뷰에서 푸틴의 직접적인 방중 자체가 미중 관계 변화에 대한 러시아의 깊은 우려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로서는 중국이 미국과의 전략적 긴장을 완화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을 협상 카드로 활용하거나 소외시킬 가능성을 차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으로부터 변함없는 전략적 신뢰를 확약받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동시에 러시아와의 전략적 연대를 유지해야 하는 이중 과제에 직면해 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중국이 미국에는 관계 안정화의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러시아에는 전략적 신뢰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이중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고 풀이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유럽 고위 당국자들의 말을 인용해 중국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정교한 균형 유지 시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최근의 연쇄 정상외교를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이 확대되는 흐름으로 규정하며 안정성의 원천으로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러시아·동유럽·중앙아시아연구소 장훙 연구원은 점점 더 많은 국가가 중국과의 교류를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와 비서방 진영을 중심으로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에 대응하는 독자적 세력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다만 중국의 이와 같은 외교적 행보가 실제 압도적인 영향력 확보로 이어지기에는 내부적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블룸버그 분석에 의하면 중국은 최근 중동 분쟁 등 주요 국제 현안에서 기대만큼의 중재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장기화되는 부동산 침체와 내수 부진 등 경제적 불확실성은 시진핑 주석의 대외 확장 전략을 제약하는 실질적인 하중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점도 중국 외교의 명확한 약점으로 꼽힌다. 미국 중심의 기술 동맹 체제 속에서 중국이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정상외교를 통한 영향력 확대는 선언적 의미에 그칠 위험이 크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경제적 취약성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미러 사이의 균형 외교 역시 장기적인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쇄 정상회담은 중국이 국제 사회에서 차지하는 전략적 가치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 및 대만 문제 등 갈등 요소를 관리하면서도 러시아라는 강력한 전략적 파트너를 손에 쥐고 있음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이는 향후 미중 전략 경쟁의 전개 과정에서 중국이 행사할 수 있는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고도의 포석으로 평가받는다.

결국 시진핑 주석의 이번 외교 무대는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 속에서 중국이 어느 정도의 독자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 결과에 따라 유라시아 대륙의 지정학적 구도는 물론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향방도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을 향한 세계 정상들의 발길은 당분간 중국이 국제 정치의 중심부에서 이탈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저작권자 © 재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시진핑의#등거리#외교가#베이징을#무대로
시진핑의 등거리 외교가 베이징을 무대로 미중러 삼각 관계의 새로운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 글로벌 : 재경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