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다카이치 일본 총리 방한에 대구·경북 시민단체 반발... 조세이탄광 진상규명 및 식민 지배 책임 촉구

음영태 기자
다카이치 일본 총리 방한에 대구·경북 시민단체 반발... 조세이탄광 진상규명 및 식민 지배 책임 촉구
©연합뉴스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를 향해 대구와 경북 지역 시민단체들이 과거사 해결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며 강력한 규탄 목소리를 냈다. 장생탄광(조세이탄광) 희생자 유족들은 지난 1월 양국 정상이 합의한 DNA 감정 약속의 구체적인 이행 일정을 밝힐 것을 촉구했으며, 독립운동의 성지인 안동에서는 식민 지배 책임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경찰은 대구공항 일대에만 170여 명의 경비 인력을 투입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삼엄한 경계 태세를 유지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입국한 대구공항과 회담 예정지인 경북 안동에서 일본 정부의 과거사 대응을 비판하는 시민단체의 집단행동이 잇따라 발생했다. 장생탄광(조세이탄광) 희생자 귀향추진단 소속 회원 10여 명은 다카이치 총리가 도착하는 대구공항 국제선 입국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정부의 실질적인 조치를 요구했다. 이들은 양국 정상이 지난 1월 합의한 유골 DNA 감식 약속이 현재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다는 점을 강력히 성토하며 구체적인 일정 공개를 압박했다.

조세이탄광은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위치했던 해저 탄광으로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의 아픈 역사가 서린 비극의 현장이다. 1942년 발생한 수몰 사고로 인해 당시 탄광에서 일하던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 등 총 183명의 노동자가 지하 깊은 곳에 매몰되어 목숨을 잃었다. 사고 이후 수십 년이 흘렀으나 희생자들의 유골은 여전히 차가운 바닷속에 방치되어 있어 유족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한일 양국 정부는 전날인 18일 희생자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정에 착수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하며 과거사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이러한 발표가 구체적인 로드맵이 결여된 형식적인 선언에 그칠 것을 우려하며 일본 정부의 공식 조사와 진상규명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귀향추진단 측은 "지난 1월 양국 정상은 DNA 감식을 약속했지만 현재까지 실질적인 진전이 없다"며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경찰은 정상회담 관련 경호와 안전 확보를 위해 대구공항 일대에 대규모 경비력을 배치하며 긴장감을 높였다. 이날 현장에는 경찰 인력 170여 명을 비롯해 순찰차 20여 대와 사이드카 20여 대가 투입되어 입국장 주변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시민단체 회원들과 경찰 사이의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으나 다카이치 총리의 도착을 앞두고 팽팽한 대치 국면이 지속되었다.

같은 시각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경북 안동의 한 호텔 앞에서도 다카이치 총리를 규탄하는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등 3개 시민단체 소속 회원 10여 명은 기자회견을 통해 식민 지배 책임을 부정하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 정부의 우경화 행보를 비판했다. 이들은 특히 안동이라는 장소가 갖는 역사적 상징성을 강조하며 이번 정상회담의 장소 선정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출했다.

안동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성지로서 한국 근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시민단체는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이기 이전에 안동은 전국에서 독립투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다"라며 "양국 정상 간 상호 고향 방문이라는 명분으로 안동이 일본에 소개되는 것을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안동의 역사적 자부심이 일본 총리의 방문으로 인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기자회견 과정에서 시민단체 측과 경찰은 집회 장소 점거 문제를 놓고 약 10여 분간 실랑이를 벌이며 일시적인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경찰은 경호 구역 유지를 위해 집회 인원들의 접근을 제한했으며 시민단체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며 맞섰다. 호텔 주변은 회담 시작 전부터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으며 주요 도로마다 검문검색이 강화되어 긴장된 분위기가 역력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민단체의 반발이 단순한 감정적 대응을 넘어 오랜 기간 해결되지 않은 한일 과거사 문제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귀향추진단 소속 관계자는 "일본 정부는 조세이탄광 희생자 유골 DNA 감정 협력 약속에 대한 일정을 구체적으로 밝혀달라"며 정부 차원의 강력한 외교적 대응을 주문했다. 이는 한일 관계 개선의 흐름 속에서도 피해자 중심의 해결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시장과 사회의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이 양국의 경제 협력과 안보 공조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신중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외교적 마찰이 지나치게 격화될 경우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한국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법치와 질서를 중시하는 관점에서는 합법적인 집회의 권리는 존중하되 국가적 행사인 정상회담의 원활한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는 자제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향후 한일 양국 정부가 조세이탄광 DNA 감식에 대해 얼마나 속도감 있는 후속 조치를 내놓을지가 이번 회담의 성패를 가를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대응을 예의주시하며 약속 이행이 지연될 경우 추가적인 집단행동에 나설 것임을 예고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이번 방문이 과거사의 상처를 치유하는 전환점이 될지 아니면 지역 사회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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