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 수급 불확실성에 대응해 원유와 석유제품을 상호 융통하는 스와프 체계를 구축한다. 양국은 세계 2·3위의 LNG 수입국으로서 천연가스 분야 협력을 강화하고, 아시아 전역으로 자원 공급망 공조를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한일 양국이 경북 안동에서 개최된 정상회담을 계기로 에너지 안보를 위한 실질적 공조 체계를 가동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본 경제산업성과 함께 원유 및 석유제품의 상호 융통을 골자로 하는 스와프 체계 구축에 합의했다. 이번 조치는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장기화함에 따라 국가 경제의 혈맥인 에너지 수급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다.
원유와 석유제품 분야에서 어느 한 국가에 공급 차질이 발생할 경우 즉각 물량을 지원하는 메커니즘이 이번 합의의 핵심이다. 양국은 수급 위기 상황에서 불필요한 수출 제한 조치를 자제하며 시장의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기로 했다. 이는 자원 민족주의가 확산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인접국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시장 질서 확립의 모범 사례가 될 전망이다.
조달과 운송 분야에서의 긴밀한 협력은 주요 산유국에 대한 협상력을 제고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한국과 일본은 원유 도입 과정에서의 물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공동 대응을 통해 수입 비용 절감을 도모한다.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양국이 구매력을 결집함으로써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세계 천연가스 시장의 큰손인 양국은 액화천연가스(LNG) 수급 안정화에도 역량을 집중한다. 한국가스공사와 일본 에너지 기업 JERA가 지난 3월 14일 체결한 협력 협약서를 바탕으로 정부 차원의 지원 사격이 본격화된다. 세계 2위와 3위의 LNG 수입국인 양국이 손을 잡음으로써 동북아시아 에너지 허브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핵심 산업의 공급망 회복력을 높이기 위한 정부 간 위기 대응 시스템도 한층 정교하게 설계된다. 지난 3월 김정관 산업부 장관과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산업성 대신이 체결한 한일 공급망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공조가 이뤄진다. 양국 정부는 경제 안보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인식 아래 민관 합동 대응 체계를 강화할 방침이다.
협력의 지평은 한반도와 열도를 넘어 아시아 지역 전역으로 확장되는 양상을 띤다. 일본이 제안한 아시아 에너지·자원 공급망 강화 파트너십인 'POWERR Asia' 구상에 한국이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이는 역내 비축 분야를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서 공동의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여 아시아 전체의 에너지 회복력을 높이는 중장기적 프로젝트다.
정책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 양국 고위급 인사가 참여하는 한일 산업통상정책대화가 신설된다. 정례화된 논의 기구를 통해 에너지 정책의 정합성을 높이고 실무 차원의 걸림돌을 상시 해소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양국 간의 경제 협력을 제도적 틀 안에서 완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일각에서는 양국의 에너지 비축 시설 차이로 인해 실제 위기 발생 시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세부 실행 지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별 법적 규제와 비축유 방출 기준이 상이한 만큼 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행정적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공급망 붕괴라는 거대 위험에 대비한 보험 성격의 협력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정부는 이번 합의를 통해 에너지 안보의 불확실성을 걷어내고 경제적 실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상황 속에서 에너지 안보 및 공급망 회복력 분야의 협력 강화를 추진할 필요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했다"며 "양 정상 간 논의의 후속 조치를 구체화하기 위해 실질적 협력 방안을 공동으로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양국은 앞으로 신설된 산업통상정책대화를 통해 구체적인 스와프 물량과 시기를 확정 지을 예정이다. 에너지 수급 위기 대응을 위한 골든타임을 확보하고 국가 경제의 안정성을 도모하는 이번 합의는 한일 관계 정상화의 상징적 결과물로 평가받는다. 정부는 민간 기업 간의 협력도 적극 지원하여 자원 안보의 실효성을 높여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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