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33년 만에 열린 법정의 문, 공군사관학교 '하극상 누명' 퇴교생의 사투와 법리적 반전

김영 기자
33년 만에 열린 법정의 문, 공군사관학교 '하극상 누명' 퇴교생의 사투와 법리적 반전
©연합뉴스

 

공군사관학교에서 하극상 누명을 쓰고 퇴교당한 유정민 씨가 33년 만에 재심을 통해 명예 회복의 기회를 잡았다. 대법원의 새로운 판례가 '법률상 이익'의 범위를 넓히면서, 12번의 패소를 딛고 다시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대전고법 청주재판부 행정1부는 유 씨가 제기한 징계처분 무효확인 소송의 재심을 개시하며 법리적 쟁점을 다시 살피기로 결정하다.

대전고법 청주재판부 행정1부는 유정민 씨가 공군사관학교를 상대로 낸 징계처분 무효확인 소송의 재심 재판을 열고 30여 년 전의 퇴교 처분이 적절했는지를 다시 따져보기로 하다. 이번 재심은 과거 유 씨가 제기했던 수많은 소송이 '법률상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된 이후, 대법원의 전향적인 판례 변화에 힘입어 성사되다. 유 씨는 1993년 퇴교 처분 이후 12번에 걸친 민사 및 행정소송에서 모두 패소했으나, 끈질긴 법리 검토 끝에 재판부의 재심 개시 결정을 끌어내다.

사건의 발단은 유 씨가 공군사관학교 44기로 재학 중이던 1993년 12월 20일로 거슬러 올라가다. 당시 학교 측은 유 씨가 선배에게 반말과 폭행을 가해 군기를 문란하게 했다는 이유로 퇴교 처분을 내리다. 유 씨는 선배로부터 오히려 폭행을 당한 피해자였으며, 중대장의 회유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했다고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다. 공군본부 역시 이후 조사를 통해 중대장과 가해 학생에게 징계 처분을 내렸으나, 정작 유 씨의 퇴교 처분은 취소하지 않는 모순적 행태를 보이다.

국가를 상대로 한 유 씨의 법적 투쟁은 퇴교 9년 만인 2003년 손해배상 소송으로 본격화되다. 법원은 국가배상 청구권의 소멸 시효인 5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유 씨의 주장을 기각하며 법치주의의 형식적 잣대를 우선하다. 이후 유 씨는 변호사 없이 홀로 법전을 뒤지며 2004년과 2013년에 해임 처분 무효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매번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소를 각하하다. 학교를 떠난 지 오랜 시간이 흘러 퇴교 처분이 무효가 되더라도 유 씨가 얻을 수 있는 현실적 이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이다.

법리적 막다른 길에 몰렸던 유 씨는 행정절차법상의 허점을 발견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다. 퇴교 당시 학교 측으로부터 공식적인 '퇴교 처분서'를 송달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행정청이 처분서를 작성해 당사자에게 도달시켜야 효력이 발생한다는 원칙에 따라 2021년 다시 소송을 제기했으나, 대법원까지 가는 접전 끝에 또다시 법률상 이익 부존재를 이유로 패소하다. 이는 유 씨가 겪은 12번째 패배였으며, 사실상 명예 회복의 길이 차단된 것처럼 보이다.

반전의 계기는 2023년 대법원에서 나온 새로운 판례가 마련하다. 대법원은 징계 처분을 받은 학생이 이미 학교를 졸업했더라도 준영구적으로 보존되는 징계 내역이 현재의 권리나 법률상 지위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면 소송을 다툴 이익이 있다고 판결하다. 이 판례는 과거 '졸업 후 실익 없음'을 이유로 소송을 배척하던 관행을 깨고, 개인의 명예와 법적 지위 회복을 위한 사법적 구제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힌 결정으로 평가받다.

유 씨는 해당 판례를 근거로 즉각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약 2년의 심사 숙고 끝에 재심 재판을 열기로 결정하다. 재심 재판에서 유 씨는 33년 전의 진실을 규명해달라고 강력히 요청하며 국가 권력의 부당한 처분을 바로잡아달라고 호소하다. 유 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33년 전 억울하게 학교를 떠난 뒤 단 하루도 그 일을 잊고 산 적이 없다"며 "이번 재판을 통해 뒤늦게라도 진실이 밝혀져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고 강조하다.

공군사관학교 측은 유 씨의 재심 청구에 대해 법적 안정성을 강조하며 방어적인 태도를 유지하다. 학교 측 대리인은 "이미 확정판결이 난 사건에 대해 다른 판결이 나올 경우 기판력에 저촉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펴며 재심의 정당성을 부정하다. 기판력이란 한번 확정된 판결에 부여되는 구속력으로,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시 재판할 수 없게 함으로써 법적 혼란을 방지하는 원칙을 의미하다.

법조계는 이번 재심이 단순한 개인의 명예 회복을 넘어 군 교육기관 내 징계 절차의 투명성과 사법적 통제의 범위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보다. 특히 행정절차법상 처분서 송달 여부와 대법원의 새로운 '법률상 이익' 해석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재판부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가 핵심 쟁점이다. 3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축적된 법적 분쟁의 결과가 개인의 권리 구제라는 헌법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지 주목받다.

재판부는 향후 심리 과정에서 당시 징계 위원회의 기록과 공군본부의 조사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퇴교 처분의 위법성 여부를 가릴 예정이다. 만약 유 씨가 승소할 경우 이는 군 내 부당 징계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이다. 재판의 결과는 법적 안정성 유지와 정의 실현이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사법부가 내리는 엄중한 판단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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