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외환위기 이후 28년 만의 물가 쇼크… 4월 생산자물가 2.5% 급등하며 경제 전반 비상

정휘 기자
외환위기 이후 28년 만의 물가 쇼크… 4월 생산자물가 2.5% 급등하며 경제 전반 비상
©연합뉴스

 

중동 분쟁에 따른 국제 유가 폭등으로 국내 생산자물가가 28년 만에 최대폭으로 치솟으며 실물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2.5% 상승한 128.43을 기록하며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가파른 오름세를 보였다. 특히 원재료 가격 상승률은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향후 소비자물가에 강력한 상방 압력을 예고했다.

국내 기업들이 피부로 느끼는 생산 비용 부담이 외환위기 당시 수준으로 악화하며 거시경제 전반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4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28.43으로 집계되어 전월의 125.35보다 2.5%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98년 2월 기록한 2.5% 상승률과 동일한 수치로, 사실상 28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 폭을 기록한 셈이다. 생산자물가는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오름세를 8개월째 지속하며 하방 경직성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공산품 부문의 물가 상승은 석유 및 석탄 제품이 주도하며 산업 생태계 전반의 원가 부담을 가중시켰다. 석유 및 석탄 제품의 상승률은 전월 대비 31.9%를 기록하며 지난달의 급등세를 그대로 이어갔다.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73.9%에 달해 2022년 6월 이후 약 3년 10개월 만에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에너지 가격의 고공행진은 제조원가 상승으로 직결되어 기업 경영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세부 품목별로 살펴보면 화학 및 연료 계열의 가격 폭등세가 더욱 뚜렷하게 관측된다. 산업용 용제로 쓰이는 솔벤트는 전월 대비 94.8%라는 기록적인 상승률을 보였으며, 물류 비용의 핵심인 경유도 20.7% 상승했다. 항공 운송 비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트유 역시 큰 폭으로 오르며 산업 전방위적인 가격 인상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기초 원자재의 가격 급등은 시차를 두고 최종 소비재 가격에 전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수입 물품을 포함하여 국내에 공급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변동을 측정한 국내 공급물가지수는 더욱 심각한 수치를 보였다. 4월 공급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5.2% 상승하며 생산자물가보다 더 가파른 오름세를 나타냈다. 특히 원재료 부문의 상승률은 28.5%를 기록하며 1980년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이는 중동 전쟁 여파로 인한 원자재 수급 불안이 국내 경제 구조의 취약점을 그대로 파고들었음을 시사한다.

서비스 물가 역시 금융 부문을 중심으로 상승 대열에 합류하며 전체 지수를 끌어올렸다. 서비스 지수는 전월 대비 0.8% 올랐으나, 금융 및 보험 부문은 전년 동월 대비 26.2% 급등하며 1995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증시 호조에 따른 위탁 매매 수수료가 1년 전보다 119.0% 폭증한 점이 서비스 물가 상승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자본 시장의 활력이 역설적으로 서비스 물가의 하단을 지지하며 물가 안정화 기조를 방해하는 형국이다.

반면 농림수산품 가격은 전월 대비 1.0% 하락하며 공산품과 대조적인 흐름을 보였다. 농산물이 4.0% 하락하고 수산물이 3.2% 내리면서 전체적인 물가 폭주를 소폭 억제하는 완충 작용을 수행했다. 다만 전력, 가스, 수도 및 폐기물 부문은 산업용 도시가스가 3.9% 오르는 등 공공요금 성격의 비용이 0.3% 상승하며 기업들의 고정비 부담을 늘렸다. 이는 시장의 자율적 수급 조절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비용 상승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문희 한국은행 물가통계팀장은 물가 흐름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시장의 주의를 당부했다. 이 팀장은 "중동 전쟁 지속에 따른 원자재 공급 차질과 가격 상승 영향이 시차를 두고 여러 부문으로 파급되고 있다"며 "이는 생산자물가 상방 압력으로 작용하며 향후 소비자물가에도 상방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또한 "시장 수요 상황과 경영 여건, 정부 정책 등 여러 변수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향후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출하와 수출품을 모두 포함한 총산출물가지수도 3.9% 상승하며 대외 거래 가격의 불안정성을 드러냈다. 농림수산품이 0.8%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공산품이 5.8% 급등하며 전체 지수 상승을 견인했다. 이는 수출 기업들이 원가 상승분을 가격에 반영해야 하는 압박에 직면해 있음을 의미하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대목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이 수출입 구조 전반의 채산성을 악화시키는 고리로 작동하고 있다.

향후 물가 전망 역시 낙관하기 어려운 지표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5월 들어 두바이유 가격과 원/달러 환율이 전월 평균보다 다소 하락하며 진정 기미를 보였으나, 공공요금 인상이라는 복병이 남아 있다. 산업용 도시가스 요금 인상과 국내 항공 여객 요금의 추가 상승이 예고되어 있어 물가 하락 전환을 예단하기는 시기상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원자재 가격의 변동성과 정책적 요인이 결합하면서 물가 관리의 난도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결국 이번 생산자물가 급등은 대외 충격에 취약한 국내 경제의 구조적 한계를 다시 한번 확인시킨 사건이다. 에너지와 원자재의 높은 해외 의존도는 중동 분쟁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할 때마다 국내 물가 체계를 뿌리째 흔드는 고질적 원인이 되고 있다. 법치와 시장 질서에 기반한 비용 통제와 에너지 효율화 등 근본적인 공급 측면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외환위기급 물가 쇼크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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