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워시 신임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취임했으나 시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을 70%로 내다보고 있다. 생산자물가지수가 6.0% 치솟으며 인플레이션 공포가 재점화된 가운데, 연준 내부의 매파적 기류가 의장의 정책 전환을 압도하는 형국이다. 30년 만기 미국채 금리는 5.1%를 돌파하며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시장은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했다.
케빈 워시 신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취임했으나 시장의 시선은 금리 인하가 아닌 인상으로 향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예상치를 크게 웃돌면서 연준이 현재의 긴축 기조를 더욱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장은 워시 의장의 개인적 성향보다 객관적인 경제 지표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집단 의사결정 구조에 더 큰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물가 지표는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을 금리 인상 쪽으로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4월 미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6.0%를 기록하며 202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앞서 발표된 소비자물가지수(CPI) 역시 3.8% 상승하며 3년 만에 최대 폭을 기록하는 등 인플레이션의 기조적 하락세가 멈췄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금융시장은 이미 연준의 차기 행보가 금리 인하가 아닌 인상이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선물 시장은 올해 12월까지 연준이 기준금리를 한 차례 이상 인상할 확률을 70% 수준으로 평가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가 강력히 요구해온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은 현재 시장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는 상황이다.
채권 시장의 움직임은 인플레이션 재발에 대한 투자자들의 공포를 여실히 보여준다. 30년 만기 미국채 등 초장기물 금리는 최근 5.1%를 돌파하며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시장 참여자들이 장기적인 물가 상승 위험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연준의 긴축 기조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물 경제 지표 역시 연준이 금리를 인하해야 할 명분을 약화시키고 있다.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4.3% 수준을 유지하며 고용 시장의 견조한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뉴욕증시 3대 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자산 시장의 과열 양상이 뚜렷해지면서 오히려 과잉 유동성을 억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실정이다.
월가 전문가들은 현재의 통화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잡기에 충분히 긴축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JP모건의 마이클 페롤리 미국 이코노미스트는 "현 통화정책이 긴축적이라고 보이지 않는다"라며 연준이 올해 금리를 동결한 후 내년부터 본격적인 인상에 나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로 빠르게 수렴하지 않는다면 연준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동결 아니면 인상뿐이라는 지적이다.
워시 의장의 취임이 연준의 정책 기조를 즉각적으로 변화시키기에는 제도적 한계가 명확하다. 연준의 통화정책 결정 기구인 FOMC는 의장을 포함한 이사 7명과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 5명 등 총 12명의 투표권자로 구성된다. 의장 한 사람의 의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다수결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위원회의 합의 없이는 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 없는 구조다.
실제로 최근 공개된 FOMC 의사록을 보면 연준 위원 다수는 물가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매파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동안 통화 완화를 선호하는 비둘기파로 분류됐던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조차 최근 강연에서 입장을 선회했다. 월러 이사는 "인플레이션이 진정되지 않는다면 향후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밝히며 매파적 흐름에 동참했다.
연준 이사진의 인적 구성 변화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 양상이다. 워시 의장이 합류하는 과정에서 강성 비둘기파였던 스티븐 마이런 이사가 물러나면서 이사진 내 친정부 성향 인사의 비중은 그대로 유지됐다. 결과적으로 연준 내부의 정책 결정권은 여전히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통 관료와 경제학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워시 의장은 취임 전 연준의 선제안내(포워드 가이던스) 폐지 등 체제 개혁을 예고했으나 이 역시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연준 내부의 지지 없이 단독으로 추진하는 개혁은 정책 신뢰성만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시장은 워시 의장이 정치적 압력과 경제적 실재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내릴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워시 의장의 완화적 성향이 시장의 기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여 오히려 금리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마크 서머린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부국장은 "현 경제 환경에서 비둘기파적 실수를 저지른다면 장기채권 시장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정책의 일관성이 훼손될 경우 채권 금리가 폭등하며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논리다.
정치적 압박과 시장의 냉혹한 데이터 사이에서 워시 의장의 리더십은 시험대에 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닉 티미라오스 기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워시를 선택한 것은 금리 인하를 위해서였으나 이제는 워시가 금리를 올리더라도 정치적으로 버틸 수 있느냐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워시 의장이 직면한 첫 번째 과제는 대통령의 기대가 아닌 폭주하는 물가 지표를 제어하는 일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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