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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의 신' 스즈키 도시후미 별세, 유통 혁명으로 세계 시장 재편한 93년의 기록

이성경 기자
'편의점의 신' 스즈키 도시후미 별세, 유통 혁명으로 세계 시장 재편한 93년의 기록
©연합뉴스

 

미국식 편의점을 일본식 모델로 재정립하여 세계 최대 유통 체인을 구축한 스즈키 도시후미 세븐&아이홀딩스 명예고문이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판매정보시스템(POS)을 세계 최초로 마케팅에 도입하고 효율 중심의 '도미넌트 전략'을 관철하며 현대 유통업의 표준을 제시한 인물이다. 1974년 도쿄 1호점으로 시작된 그의 혁신은 1991년 미국 본사 경영권 인수와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 확대로 이어졌다.

스즈키 도시후미 세븐&아이홀딩스 명예고문이 지난 18일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나며 일본 유통업계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 고인은 1932년 나가노현에서 태어나 주오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도쿄출판판매를 거쳐 1963년 이토요카도에 입사하며 유통업에 투신했다. 1971년 이사로 승진한 그는 미국 시찰 중 발견한 편의점 '세븐일레븐'의 가능성을 간파하고 미국 사우스랜드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는 결단을 내렸다.

주변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1974년 도쿄 도요스에 1호점을 개설한 것은 일본 유통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모기업인 이토요카도는 대형 슈퍼마켓 확장에 집중하고 있었으나 스즈키 고인은 중소 소매점의 경영 근대화가 대형 점포와의 공존을 가능케 한다고 확신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소형 점포의 생산성을 개선하면 대형 점포만으로 채울 수 없는 수요를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경영 철학을 밝힌 바 있다.

물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특정 지역에 점포를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도미넌트 전략'은 그의 상징적인 업적이다. 1976년에는 여러 회사의 우유를 한 트럭에 싣는 공동 배송 시스템을 구축하여 기존의 유통 관행을 철저히 파괴했다. 이러한 효율성 중심의 접근은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신선 식품의 적기 공급이라는 소비자 편익으로 직결되었다.

디지털 데이터의 가치를 선제적으로 파악한 혜안은 1982년 판매정보시스템(POS) 도입으로 구체화되었다. 당시 POS는 단순히 계산 실수를 방지하는 용도로 쓰였으나 그는 이를 세계 최초로 고객 구매 성향 분석과 마케팅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NEC와의 공동 개발을 통해 설비 비용을 절반으로 낮추고 전 점포에 바코드 시스템을 정착시킨 것은 데이터 경영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유통업의 범위를 금융과 공공 서비스로 확장한 점도 스즈키 고인의 탁월한 성과 중 하나다. 1980년대부터 시작한 전기와 가스요금 수납 대행 서비스는 편의점을 생활 밀착형 플랫폼으로 변모시켰다. 2001년 설립된 '세븐은행'은 편의점 내 ATM 네트워크를 통해 금융 서비스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며 수익 모델을 다변화했다.

상품 개발에 있어서는 '상식'을 거부하는 역발상으로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장기 불황 속에서도 가격이 높은 고급 주먹밥을 출시하거나 전국 전용 공장에서 생산한 '직송 빵'을 판매하는 등 품질 중심의 경영을 고수했다. 특히 매장주와 시간제 근로자에게도 발주 권한을 부여하여 현장의 의외성을 경영에 반영하는 파격적인 조직 문화를 정착시켰다.

고인은 2008년 저서 '조령모개의 발상'을 통해 "맞바람이 불 때는 실력이 바로 결과로 나타난다"며 "맞바람을 기회로 바꾸려면 평소에 올바른 자세로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불굴의 의지는 1991년 경영난에 빠진 미국 본사 사우스랜드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는 라이선스 도입국이 원조 국가의 기업을 흡수하며 글로벌 표준을 주도하게 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국내 유통 시장 역시 스즈키 고인의 영향력 아래 성장해왔다. 1988년 설립된 코리아세븐은 그의 경영 모델을 이식받아 1989년 한국 내 첫 점포를 열었으며 이후 국내 편의점 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오늘날 한국 편의점의 도시락 경쟁이나 각종 수납 서비스 역시 그가 정립한 일본식 편의점 모델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각에서는 도미넌트 전략이 점주 간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고 본사의 이익만을 우선한다는 비판적 시각을 제기하기도 한다. 특정 지역 내 밀집 출점이 점주들의 영업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은 유통 대기업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즈키 고인이 구축한 효율적 공급망과 소비자 중심의 혁신이 현대 유통업의 생존 논리를 정립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향후 글로벌 유통 시장은 그가 남긴 유산을 바탕으로 인공지능과 무인화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전망이다. 스즈키 고인이 강조했던 '변화에 대한 대응'은 이제 디지털 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맞물려 후대 경영인들에게 계승되고 있다. 유통업을 단순한 판매업에서 서비스업이자 정보산업으로 격상시킨 그의 궤적은 전 세계 유통사의 교과서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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