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반도체 슈퍼 사이클의 귀환, 한국 수출 사상 첫 9000억 달러 고지 밟는다

이성경 기자
반도체 슈퍼 사이클의 귀환, 한국 수출 사상 첫 9000억 달러 고지 밟는다
©연합뉴스

 

한국의 연간 수출액이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힘입어 사상 처음으로 9000억 달러 시대를 열고 무역수지 역시 2200억 달러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연구원은 올해 수출이 전년 대비 30.3% 급증한 9244억 달러에 달하며 세계 4위권 수출국인 네덜란드를 앞설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반도체와 정보통신기기 등 IT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이 전체 경제성장률을 2.5%까지 끌어올리는 강력한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연구원은 26일 발표한 '2026년 하반기 경제·산업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한국의 통관 수출이 지난해보다 30.3% 증가한 9244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7000억 달러 수출고를 돌파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지 불과 1년 만에 다시 한번 기록적인 성장을 예고한 셈이다. 수입은 11.6% 늘어난 7054억 달러 규모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연간 무역수지는 사상 최대치인 2200억 달러 규모의 흑자를 달성할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 역시 상반기 2.9%와 하반기 2.1%를 거쳐 연간 2.5%로 대폭 상향 조정되며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이는 지난해 말 연구원이 예측했던 1.9%에서 0.6%포인트나 높아진 수치로 반도체 중심의 IT 경기 호조가 결정적인 상향 요인으로 작용했다. 중동 전쟁에 따른 에너지 수급 불안정과 비용 상승이라는 하방 압력이 존재하지만 정부의 확장적 재정 기조와 수출 증가세가 이를 충분히 상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산업별로는 반도체와 정보통신기기 등 IT 신산업군이 전체 수출 증가세를 압도적으로 주도하며 국가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수행할 전망이다. 반도체 수출은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힘입어 전년 대비 101.9%라는 경이로운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며 정보통신기기 역시 93.2%의 폭발적인 증가가 예상된다. 이차전지와 바이오헬스, 조선 분야도 각각 6.8%, 8.1%, 4.4%의 성장세를 보이며 수출 전선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자동차와 일반기계, 가전 등 일부 주력 산업은 글로벌 대외 여건의 악화로 인해 수출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자동차 수출은 전년 대비 1.7% 감소가 예상되며 일반기계와 가전 또한 각각 1.0%, 5.1%의 마이너스 성장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관세 정책과 중동 위기, 중국과의 경쟁 심화 및 글로벌 수요 둔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반도체 편중 현상과 수출액 증가가 물량 확대보다는 가격 상승에 상당 부분 기인했다는 점은 한국 경제가 풀어야 할 시급한 숙제로 지적된다. 권남훈 산업연구원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수출과 무역수지가 역대 최대 수준으로 예상되지만 좋은 실적이 상당 부분 가격 효과에 기인하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원장은 이어 "실질적인 생산 확대가 뒷받침되어야 장기적인 긍정적 영향이 가능하므로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전망에만 도취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AI 인프라 투자 확대로 인한 ICT 수요 증가세는 중동 전쟁의 불확실성을 뚫고 한국 수출의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의 관세 정책이 국내 산업에 미치는 실질적인 타격은 시장의 우려보다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나 향후 통상 환경의 변화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민간 소비는 2.2%, 설비 투자는 2.9% 증가할 것으로 보여 내수와 수출의 균형 잡힌 성장이 향후 지속 가능한 성장의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수출 위상은 이번 전망이 현실화될 경우 세계 4위권인 네덜란드를 추월할 수 있는 수준까지 격상될 것으로 보인다. 사상 최대의 무역 흑자는 국내 외환 시장의 안정성을 높이고 국가 신용도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특정 품목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은 대외 충격 발생 시 경제 전체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는 취약점으로 남는다.

정부는 이러한 수출 호조세를 이어가기 위해 첨단 산업에 대한 투자 세액 공제와 규제 완화 등 다각적인 지원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반도체 가격 변동에 따른 기저 효과가 사라지는 시점을 대비해 비IT 주력 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는 정책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에너지 가격 변동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존하는 만큼 공급망 다변화를 통한 리스크 관리 체계 구축도 시급한 과제다.

결국 올해 한국 경제는 반도체라는 강력한 엔진을 달고 사상 유례없는 수출 실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성과가 단순한 수치상의 기록을 넘어 국내 고용 창출과 가계 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대외 환경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며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전략적 대응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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