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금융권 '무늬만 생산적 금융' 퇴출... 매년 실적 팩트북 공개 및 평가체계 구축

정휘 기자
금융권 '무늬만 생산적 금융' 퇴출... 매년 실적 팩트북 공개 및 평가체계 구축
©연합뉴스

 

국내 금융회사들이 매년 생산적 금융 실적을 담은 '팩트북(Factbook)'을 제작해 대중에게 공개하고 시장의 객관적 평가를 받는 체계가 전격 도입된다. 금융위원회는 이를 통해 실적 부풀리기를 차단하고 자본이 에너지 대전환 등 국가 전략 산업으로 흐르도록 하는 실질적인 금융 환경을 조성할 방침이다. 올해 4분기 첫 공개를 시작으로 금융권의 핵심성과지표(KPI) 반영과 조직 확충 등 내재화 작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국내 금융회사들이 매년 생산적 금융 실적을 담은 팩트북을 제작해 대중과 이해관계자에게 공개하는 공시 체계를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금융권의 자금 공급이 단순 가계대출이나 부동산 금융에 치중되는 현상을 개선하고 실제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지 검증하기 위한 조치다. 금융회사는 매년 4분기에 관련 성과를 홍보하고 정부와 전문가, 시장 참여자로부터 엄격한 평가를 받게 되며 이는 올해부터 즉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26일 주재한 '제4차 금융업권 생산적 금융 협의체' 회의에서 생산적 금융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네 가지 핵심 과제를 제시했다. 금융권이 스스로 산업 연구 역량을 제고하고 관련 조직과 인력을 확충하는 것이 과제의 골자다. 특히 생산적 금융 실적을 금융회사의 핵심성과지표(KPI)에 반영하여 이를 일시적인 정책 협조가 아닌 하나의 기업 문화로 정착시킬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정부는 금융권의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제도적 인센티브와 지원책을 병행하여 추진한다. 생산적 금융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해 금융권이 위축되지 않도록 검사 및 제재 면책 등 파격적인 지원 방안을 조속히 마련할 계획이다. 이는 금융사들이 혁신 산업이나 장기 프로젝트에 자금을 공급할 때 걸림돌이 되었던 보신주의적 행태를 법적 안전장치를 통해 해소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금융권 스스로 실적의 적정성을 검증하는 내부 통제 시스템 강화도 이번 대책의 핵심 축을 담당한다. 이른바 '무늬만 생산적 금융'이라는 비판과 실적 부풀리기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금융회사가 설정한 기준이 실제 정책 취지에 부합하는지 자율 검증해야 한다. 권 부위원장은 "생산적 금융이 단순한 홍보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금융권과 정부가 역량을 체계화하고 내재화하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협의체는 정부와 민간 부문이 상시 소통하며 산업 발전과 금융을 잇는 가장 실질적인 플랫폼으로 기능할 전망이다. 회의에서는 민간 금융권의 생산적 금융 성과를 점검하는 동시에 에너지 산업 변화에 따른 금융의 역할 변화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에너지 산업은 전략적 비축과 핵심 기술 국산화 등 공급망 관점에서 국가 전략 산업으로서의 중요성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에너지 대전환기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 부문은 기존의 단기 수익 중심 투자에서 벗어나 자본 공급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초기 투자 비용이 막대하고 자금 회수 기간이 긴 에너지 산업의 특성상 장기·모험 자본의 공급이 필수적이다. 특히 재정과 민간 금융이 위험을 분담하며 협업하는 '혼합금융(Blended Finance)'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인프라 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등 질적 변화가 요구된다.

지역별 에너지 수급의 극심한 편차는 생산적 금융이 해결해야 할 새로운 사회적 과제로 지목되었다. 2023년 기준 에너지 자급률 조사 결과 수도권은 0.66으로 심각한 초과 수요 상태를 보인 반면 비수도권은 1.34로 초과 공급 상태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러한 지역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에너지 수요와 공급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인프라 투자가 생산적 금융의 핵심 타겟이 되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날 회의에는 국내 금융계를 대표하는 주요 지주사와 증권사, 보험사 임원들이 대거 참석해 실행 의지를 다졌다. KB·하나·농협·BNK·JB·한국투자금융지주와 신한·우리투자증권, 교보생명, 삼성화재 등 민간 금융사 관계자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또한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 임원과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금융 및 에너지 파트너들이 참여해 글로벌 트렌드에 기반한 전문적 식견을 공유했다.

다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매년 팩트북을 발간하고 외부 평가를 받는 과정이 과도한 행정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자율 검증 체계가 형식적인 공시에 그칠 경우 실질적인 산업 지원 효과보다는 보여주기식 지표 관리에 치중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중장기적인 투자 성과가 단기적인 KPI 평가와 충돌할 수 있다는 점도 금융사들이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았다.

향후 생산적 금융 협의체는 에너지 산업을 비롯한 국가 전략 분야로의 자금 흐름을 가속화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면책 지원과 금융권의 공시 투명성 강화가 맞물린다면 국내 경제의 체질 개선과 성장 잠재력 확충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번에 제시된 과제들을 바탕으로 생산적 금융이 시장 질서 내에서 자생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 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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