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투자냐 분배냐… 반도체 초과이익 처분 두고 산업·노동 장관 '정면충돌'

윤근일 기자
투자냐 분배냐… 반도체 초과이익 처분 두고 산업·노동 장관 '정면충돌'
©연합뉴스

 

삼성전자 총파업 위기 이후 반도체 대기업의 초과이익 처분을 놓고 정부 내 핵심 부처 장관들이 날 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사회적 재분배를 위한 공론화를 주장하자,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생산적 재투자가 절체절명의 과제라며 즉각 반박했다. 부처 간 시각차가 표면화되면서 민간 기업의 이윤 처분에 대한 정부 개입의 적절성을 둘러싼 파장이 커지는 양상이다.

삼성전자 총파업 위기 직후 불거진 반도체 대기업의 초과이익 처분 문제는 정부 내 경제 컨트롤타워 간의 이념적 균열로 번지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기업의 이윤을 사회적으로 재분배해야 한다는 화두를 던진 것이 발단이 되었다. 이에 대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현재를 투자가 최우선인 시기로 규정하며 기업 이윤의 외부 유출에 대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인공지능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기업의 이윤을 미래 경쟁력 강화에 전적으로 쏟아부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29일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인공지능 시대의 승부는 압도적인 속도와 규모에서 결정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반도체 산업이 창출하는 이윤은 현재의 성과에 안주하는 보상 재원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생산적 재투자로 연결해야 하는 자산이라는 주장이다.

김 장관은 투자 시기를 놓칠 경우 국내 반도체 생태계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강하게 드러냈다. "단 한 번의 투자 실기조차 산업 생태계를 붕괴시키고, 우리 기업들을 회복하기 어려운 패자의 길로 내몰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지금은 이익의 분산이 아니라 집중을 통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며, 머뭇거림은 곧 글로벌 경쟁에서의 도태를 의미한다는 보수적 산업 전략을 재확인했다.

반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원하청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재분배론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 27일 기자단과의 차담회에서 대기업 초과이익의 사회적 분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통로는 사회적 대화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내달 1일 노동부 주관으로 긴급토론회를 개최하여 이 문제를 공론화의 장으로 본격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민간 기업의 정당한 이익에 강제로 관여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김영훈 장관은 즉각 진화에 나섰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가 기업의 이윤에 강제적으로 개입할 권한도 없고 그럴 생각도 전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튜브 채널 출연을 통해서는 자신의 제안이 이른바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위'가 아니며, 오히려 양극화 해소와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동반성장 모델임을 강조했다.

김영훈 장관의 핵심 문제의식은 현재의 성과 공유 체계가 정규직과 원청 기업에만 국한되어 생산성 격차를 키우고 있다는 점에 있다. 삼성전자 성과 인센티브 OPI 격차 문제를 염두에 둔 듯, 이러한 성과 공유가 특정 계층에만 한정되는 것이 정의로운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노동부의 입장은 원하청 상생의 실질적인 방법을 찾아 양극화를 해소하고 결국에는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부처 간의 명확한 온도차에 대해 청와대는 각 부처의 역할에 따른 자연스러운 시각차로 규정하며 공론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노동부 장관은 성과 배분의 관점에서, 산업부 장관은 기업 이윤과 산업 경쟁력의 관점에서 각각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청와대는 향후 예정된 토론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이 수렴되는 공론화의 기회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시장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기업의 이윤 처분 방식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시장 질서를 교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초과이익의 사회적 재분배라는 명분이 자칫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고 글로벌 자본 효율성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 반도체 투자 실기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정책의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것은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향후 반도체 대기업 초과이익 재분배 논란은 내달 1일 열릴 긴급토론회를 기점으로 중대한 분수령을 맞이할 전망이다. 산업부의 투자 중심 기조와 노동부의 분배 중심 기조가 어떤 방식으로 접점을 찾을지가 향후 반도체 정책의 향방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정부의 공론화 방향이 사실상의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자발적인 원하청 상생 모델 구축과 미래 투자 사이의 균형점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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