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50%만 인쇄' 안일한 예측이 부른 참사... 선관위,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공식 사과

음영태 기자
'50%만 인쇄' 안일한 예측이 부른 참사... 선관위,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공식 사과
©연합뉴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3 지방선거 본투표 과정에서 발생한 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표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 등 총 14개 투표소에서 용지가 조기 소진되며 유권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장시간 대기하는 행정 파행이 빚어졌다. 특히 송파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의 절반 수준인 50% 분량만 용지를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나 선거 관리 부실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공정한 선거 관리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훼손한 중대 사안으로 규정하고 공식적인 사과 입장을 내놓았다. 허철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3일 밤 경기도 과천 선관위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허 사무총장은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은 국민에게 큰 혼란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사태 인지 즉시 부족한 투표소로 용지를 긴급 이송했으며 대기 중인 유권자들이 마감 시각 이후에도 정상적으로 투표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투표용지 부족 현상은 서울 시내 주요 밀집 지역인 송파구와 강남구, 광진구 일대 투표소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며 현장의 혼란을 가중했다. 윤재수 선관위 선거정책실장은 브리핑을 통해 18시 20분 기준으로 총 14개 투표소에서 문제가 확인되었다고 공식 집계 결과를 발표했다. 지역별로는 송파구가 12개 투표소로 가장 많았으며 강남구와 광진구에서도 각각 1개 투표소에서 용지가 바닥을 드러냈다. 현장에서는 투표를 하지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는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으며 일부 투표소는 운영 시간을 연장하는 고육책을 동원했다.

송파구 내에서는 가락2동, 잠실2동, 잠실4동, 잠실7동, 문정2동 등 대단지 아파트가 위치한 지역의 투표소들이 극심한 용지 부족 사태를 겪었다. 특히 잠실7동2투표소의 경우 대기표를 배부받은 유권자에 한해 투표 마감 시간을 오후 10시까지 이례적으로 연장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강남구 청담동과 광진구 구의3동 투표소 역시 예상치를 뛰어넘는 본투표 인원을 감당하지 못해 행정 공백을 노출했다. 선거 행정의 기본인 물량 수급 예측에서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며 헌법상 보장된 참정권 행사가 위협받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번 사태의 결정적인 원인은 선관위의 안일한 유권자 참여 예측과 경직된 투표용지 인쇄 물량 배정 정책에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상능 선관위 선거1국장은 송파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 수의 약 50%에 해당하는 투표용지만을 인쇄하여 배부한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실토했다. 이는 사전투표율과 본투표 참여율의 상관관계를 면밀히 분석하지 못한 채 과거 데이터에만 의존한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특정 투표구의 투표율이 급증하거나 사전투표 참여가 저조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과다.

선관위 내부에서도 과거 선거 사례 중 이와 유사한 투표용지 부족 보고가 들어온 적이 없었을 정도로 이번 사건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상능 국장은 14개 투표구 외에 추가적인 보고는 없었으나 이번과 같은 사태는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라고 설명했다. 윤재수 실장은 송파구와 같이 투표소가 많은 지역에서 일부 투표구의 유권자 수가 예상보다 많아지며 수급 불균형이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선거 관리의 핵심인 수요 예측 시스템이 대도시 밀집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작동을 멈춘 셈이다.

허철훈 사무총장은 사과문을 통해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아주신 국민께 불편을 드리고 공정한 선거 관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개표가 종료되는 즉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원인과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선관위는 현재 진행 중인 개표 작업을 무사히 마무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며 이후 책임질 일이 있다면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투표 현장의 가변성을 고려할 때 모든 투표소에 유권자 100% 분량의 용지를 비치하는 것이 예산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신중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의 근간인 선거 행정에서 예산 효율성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가치는 안정적인 투표권 보장과 법치 질서의 확립이라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50%라는 낮은 인쇄 비율은 투표율이 조금만 상승해도 시스템이 붕괴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었다. 시장 질서와 효율성을 강조하는 관점에서도 이번 사태는 예측 가능한 위험을 방치한 행정적 태만으로 규정된다.

선관위는 개표가 완료되는 대로 현장 실사 및 자체 감사를 통해 정확한 물량 산출 근거와 배부 과정을 전면 재검토할 계획이다. 투표용지 인쇄 지침의 전면 개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향후 선거에서는 실시간 투표 현황을 반영한 유연한 물량 공급 체계 도입이 논의될 전망이다. 무너진 선거 행정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사과를 넘어 실효성 있는 시스템 혁신과 책임 소재 규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번 사태는 선거 관리의 기본기가 흔들릴 때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이 얼마나 쉽게 위협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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