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미국 원유 재고 22년 만에 최저치 급락, 호르무즈 봉쇄 직격탄에 유가 폭등 경보

정휘 기자
미국 원유 재고 22년 만에 최저치 급락, 호르무즈 봉쇄 직격탄에 유가 폭등 경보
©연합뉴스

 

미국의 원유 및 석유 제품 재고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 영향으로 2004년 이후 2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 에너지정보청(EIA) 집계 결과 전체 재고는 15억 7,000만 배럴로 1주 만에 1,060만 배럴이 급감하며 에너지 안보에 비상이 걸렸다. 전략비축유와 상업용 재고가 동시에 가파르게 감소하면서 글로벌 석유 시장의 가격 변동성이 극대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미국의 에너지 안보를 지탱하는 원유 및 석유 제품 재고가 20여 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며 글로벌 시장에 강력한 수급 경고등을 켰다. 미 에너지정보청이 발표한 주간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 전체 재고량은 전주 대비 1,060만 배럴 줄어든 15억 7,000만 배럴로 확인되었다. 이는 2004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로, 미·이란 전쟁으로 인한 호르무즈 해협의 운항 제한이 4개월째 지속된 결과로 풀이된다.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소비국인 미국의 재고 고갈은 단순히 수치상의 감소를 넘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실질적인 붕괴 위험을 시사한다.

상업용 원유 재고의 감소 폭은 시장의 예상을 두 배 이상 웃돌며 수급 불균형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난달 29일 기준 미국의 상업용 원유 재고는 4억 3,370만 배럴로 전주보다 800만 배럴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로이터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인 400만 배럴 감소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로, 민간 부문의 비축 역량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급격한 재고 소진이 향후 정유 시설의 가동률 저하와 석유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최후 보루인 전략비축유(SPR) 역시 위험 수위에 도달하며 행정부의 시장 통제 능력을 시험하고 있다. 전략비축유 재고량은 1주 전보다 800만 배럴 줄어든 3억 5,712만 배럴을 기록하며 2024년 1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블룸버그의 에너지·원자재 칼럼니스트 하비에르 블라스는 "현재와 같은 방출 속도가 유지된다면 비축량은 다음 주 후반 198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가 비상시를 대비한 비축유가 시장 가격 방어를 위해 빠르게 소진되면서 향후 추가적인 지정학적 위기 발생 시 대응 수단이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산 원유의 기록적인 수출 행진은 국내 재고 고갈을 가속화하는 핵심적인 경제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5월 미국의 원유 수출량은 하루 평균 560만 배럴을 기록하며 기존 최대치였던 4월의 520만 배럴을 단 한 달 만에 경신했다. 중동 지역의 공급 불안이 장기화되자 아시아와 유럽의 정유사들이 안정적인 대안 공급원인 미국산 원유로 구매선을 대거 변경한 영향이다. 이러한 수출 증가는 미국의 무역 수지에는 긍정적이나, 국내 수급 상황을 악화시켜 내수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양날의 검이 되고 있다.

글로벌 유가의 기준이 되는 브렌트유와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간의 가격 격차 축소는 미국산 원유의 시장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지난 3월 배럴당 최대 20달러까지 벌어졌던 두 유종의 가격 차이는 최근 종가 기준 1.79달러 수준으로 급격히 좁혀졌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미국산 원유에 대한 글로벌 수요는 꺾이지 않고 있으며, 이는 재고 축적을 위한 여력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시장 효율성에 따른 자원 배분이 오히려 미국의 에너지 비축고를 비우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고 있다.

에너지 업계 리더들은 현재의 낮은 재고 수준이 초래할 파괴적인 가격 폭등 가능성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내놓고 있다. 엑손모빌의 닐 채프먼 수석 부사장은 최근 뉴욕 콘퍼런스에서 "원유 선물시장이 이란 전쟁에 따른 에너지 공급 위기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글로벌 원유 재고가 향후 2~3주 내 극히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며, 일단 그 수준에 도달하면 가격이 치솟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 전문가의 이러한 발언은 현재의 유가가 실제 수급 위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시장의 우려를 뒷받침한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하는 행정부의 정책적 선택도 재고 부족 사태를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 2월 전쟁 개시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시장 안정을 명분으로 비축유에서 약 5,800만 배럴을 방출했으며, 이는 전체 비축 규모의 약 14%에 해당한다. 과거 바이든 행정부 역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대량으로 비축유를 방출하여 1980년대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바 있다. 반복되는 비축유 방출 정책은 단기적인 가격 안정에는 기여할 수 있으나, 장기적인 에너지 안보 체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재고 감소가 일시적인 수출 급증과 정기 보수 시즌이 맞물린 계절적 현상이라는 신중한 분석을 제기하기도 한다. 미국의 원유 생산 능력이 여전히 견고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완화될 경우 재고 수준은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분석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누적 기준 10억 배럴 이상의 공급 공백이 발생했다. 이러한 거대한 수급 결손을 고려할 때 단기적인 생산량 유지만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 어렵다는 반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향후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미국의 주간 재고 지표와 중동의 군사적 전개 상황에 따라 극심한 혼조세를 보일 전망이다. 미국의 재고가 22년 만의 최저치로 추락한 상황에서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면 세계 경제는 고유가 발 인플레이션 압력에 다시 직면하게 된다. 에너지 자원의 무기화와 공급망 분절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미국이 자국 내 재고를 다시 확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과 가계는 에너지 비용 상승에 따른 경제적 충격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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