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창고형 약국 등장 이후 1년 만에 전국 매장이 약 40곳으로 급증하며 의약품 유통 시장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저렴한 가격과 쇼핑 편의를 앞세운 대형 약국이 확산하자 대한약사회는 약물 오남용과 동네 약국 붕괴를 우려하며 강력한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 국회는 '창고'나 '메가' 등의 명칭 사용을 금지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의결하며 대응에 나섰다.
창고형 약국은 작년 6월 경기도 성남에서 '메가팩토리'가 문을 연 이후 1년 만에 전국 40여 곳으로 세를 확장했다. 대형 마트와 유사한 창고형 약국은 의약품 소비의 틀을 바꾼 것으로 평가받지만, 약사 단체는 동네 약국 붕괴와 약물 오남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는 기존의 카운터 상담 중심 약국 문화에서 소비자 주도의 쇼핑 문화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으로 분석된다.
소비자가 직접 쇼핑카트를 끌고 일반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을 고르는 방식은 이른바 '약국계 코스트코'라 불리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서울 용산구의 창고형 약국을 이용한 한 소비자는 "약사 눈치를 보지 않고 원하는 약을 저렴하게 살 수 있어 기존 동네 약국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주체적인 소비를 선호하는 현대인의 욕구와 맞물려 빠르게 확산하는 추세다.
국내 약사법은 약사나 한약사가 아니면 약국을 개설할 수 없고, 1인당 하나의 약국만 운영하도록 규정하여 그간 대형화를 억제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등장한 창고형 약국은 외국 드럭스토어와 유사한 형태를 띠며 일반의약품, 화장품, 반려동물 의약품 등을 대량 진열하여 판매한다. 대부분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거나 연중무휴로 개장하여 편의성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메가팩토리를 설립한 정두선 대표약사는 정보의 비대칭성 해소를 창고형 약국의 핵심 가치로 꼽았다. 정 대표는 "약국은 약사와 고객이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상담하는 구조라 정보가 약사로부터 일방적으로 흘러간다"며 "창고형 약국은 소비자가 이곳저곳 둘러보며 원하는 약을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메가팩토리는 올해 하반기 수도권에 세 번째 매장을 열 계획이다.
대한약사회는 창고형 약국의 확산이 국민 건강권과 약국 생태계를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약사의 복약 지도 없이 무분별하게 의약품이 구매될 경우 약물 남용 사례가 빈번해질 수 있다는 논리다. 특히 작년 12월 특정 창고형 약국에서 마약 제조 원료로 쓰일 수 있는 슈도에페드린 함유 제제가 대량 진열된 사례를 들며 관리 부실 문제를 제기했다.
일선 약사들의 위기감은 수치로도 증명되고 있다. 대한약사회가 지난 4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창고형 약국 인근 약국의 81.6%가 현 상황을 심각하다고 인식했다. 조사 대상 535개 약국 중 상당수는 영양제(72.8%)와 상비약(53.3%) 부문에서 매출 감소를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용산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회 관계자는 "창고형 약국 인근의 소규모 약국들은 폐업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의약품은 일반 공산품과 달리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대형 매장 구조에서는 세밀한 복약 지도가 어려워 오남용을 막지 못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시장 효율성보다 보건 안전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관을 반영한다.
정치권에서도 창고형 약국의 명칭과 운영 방식에 대한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4월 약국 기능을 왜곡하거나 의약품 남용을 유도할 우려가 있는 명칭 사용을 금지하는 약사법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해당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창고'나 '메가'와 같은 표현은 약국 간판에서 사라지게 된다.
다만 명칭 규제만으로는 이미 변화한 소비 트렌드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메가팩토리 관계자는 "명칭을 '미니'로 변경한다고 해서 창고형 약국의 본질이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의약품 구매 방식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임을 시사했다. 소비자 편익과 보건 안전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가운데, 법적 규제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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