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행정 편의주의가 부른 참사, 6·3 지선 투표용지 고갈로 서울·인천 10여 곳 투표 중단

음영태 기자
행정 편의주의가 부른 참사, 6·3 지선 투표용지 고갈로 서울·인천 10여 곳 투표 중단
©연합뉴스

 

제9회 지방선거 본투표가 진행된 서울 동남권과 인천 일대 10여 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고갈되어 선거가 일시 중단되는 초유의 행정 사고가 발생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율 예측 실패와 예산 절감을 앞세운 소극적 용지 인쇄가 유권자의 참정권을 침해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전국 지방선거의 핵심 승부처인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 등지에서 투표용지가 조기에 소진되어 투표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며 선거 관리의 무결성이 크게 훼손되었다. 국민의힘 서울시당의 집계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서울 송파구 문정1동 제4투표소와 잠실2동 제6투표소 등 최소 10곳 이상의 투표소에서 용지 부족 현상이 공식 확인되었다. 인천 연수구 송도5동과 동춘1동 일대 투표소에서도 수십 명분의 용지가 부족해 선관위가 긴급 이송 작전을 펼치는 등 현장은 극심한 혼선에 빠졌다.

가장 심각한 정체가 발생한 서울 잠실2동 제6투표소는 오후 1시경부터 용지 부족 징후가 나타났으며 오후 4시 30분에는 투표가 전면 중단되었다. 용지 공급이 지연되면서 현장을 찾은 유권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속출하며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흔들리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선관위는 투표 마감 직전인 오후 6시가 되어서야 겨우 50장의 용지를 추가 공급했으며, 대기하던 모든 유권자가 입장한 시각은 투표 종료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7시 5분이었다.

현장 관리인들은 투표 마감 시간인 오후 6시를 넘겨 도착한 유권자와 기존 대기자를 식별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마감 시간 이후에 대기표를 발부하는 고육책을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투표소 입장이 금지된 이후 도착한 유권자들이 강하게 항의하며 사무원들과 충돌하는 등 법치에 근거한 선거 질서가 마비되는 양상을 보였다. 오후 4시 30분부터 대기하다 2시간이 지나서야 투표를 마친 정모 씨는 "민주 국가에서 투표용지가 없어 투표를 못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며 선관위의 무능함을 질타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예상보다 높은 투표율과 행정 효율성을 강조한 인쇄 정책의 결과로 돌리며 진화에 나섰다. 서울시 선관위 관계자는 "폐기되는 용지를 줄이기 위해 전체 유권자의 100%를 인쇄하지 않고 일정량만 선제적으로 준비했다"며 "이번 지방선거 투표율이 예상을 상회하면서 송파구 등 특정 지역에 수요가 몰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선관위는 공식 공지를 통해 대기 중인 유권자는 마감 시각 이후에도 정상 투표가 가능하므로 투표 포기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선거 관리의 핵심인 용지 수급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선관위를 향한 전문가들의 시선은 냉담하기만 하다. 선관위에서 30년간 재직한 한 퇴직 공무원은 "수십 년간 선거 업무를 담당했지만 투표용지가 모자라 투표가 중단되는 것은 본 적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조직의 기강 해이를 지적했다. 잠실4동 제5투표소를 찾은 또 다른 시민은 "초등학교 회장 선거에서도 발생하지 않을 저급한 행정 오류가 국가 선거에서 발생했다"며 선관위의 책임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이번 사태가 과거 '소쿠리 투표' 논란에 이어 선관위의 신뢰도를 바닥으로 추락시킨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소중한 한 표가 행정 편의주의와 비용 논리에 밀려 경시되었다는 점에서 향후 선거 무효 소송이나 책임자 문책 등 후폭풍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투표권 행사 기회를 박탈당하고 돌아간 유권자들에 대한 구제책이 전무한 상황에서 선거 관리 시스템 전반에 대한 고강도 개혁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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