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엔 국경이 없다. 나이가 대수냐". 이는 흔히들 하는 말이다. 그러나 정작 45살 나이 차를 자랑하는 남자친구를 데려온 딸, 사랑하니깐 결혼하겠단다. 금지옥엽 같은 딸을 아버지보다도 나이 많은 이 할아버지(?)에게 시집보내야 하나? 가족 구성원들의 선택은?
"그 사람의 꿈이 청년사업가였대"가 "(지금)그 사람이 청년사업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며 벌어지는 해프닝. 사돈인 줄 알았는데 사윗감이라니 아버지는 기절초풍할 지경이다. 그러나 그보다 엄마를 어떻게 설득할까 대책을 마련하기도 전에 들이닥친 '귀여운' 73살 노신사. 엄마는 딸과 결혼할 사람이 70살 노인네가 아닌 그의 젊고 잘 생긴 아들이라고 오해한다. 얽히고설킨 상황 속에 상처 될까 봐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거짓말, 이들은 '나'도 원치 않게 자꾸 그 거짓말 속으로 빠져든다. 게다가 갈수록 공범이 된 느낌은 또 뭣 때문일까.
연극 '너와 함께라면'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스피드하게 전개되는 상황, 이젠 속시원히 털어놓는가 싶더니 더 심각해진다. 오해는 저쪽 가족도 만만찮다. 노신사의 아들은 29살의 젊고 예쁜 딸이 아버지와 결혼할 사이임을 상상도 못한다. 그녀가 아닌 그녀의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할 사람이라고 오해하고, 그 딸에게 미묘하게 끌리는 감정까지 느끼는데… 급기야 제3자 같은 여자측 아버지는 '옆집 아저씨'라는 신분도 모자라 게이로 '전락'한다.
이보다 더한 콩가루 집안이 어디 있을까? 이보다 더 황당한 일들이 또 있을까? 하지만 유쾌한 웃음의 힘은 참으로 강력하다. 어떤 한 주어진 상황, 그 상황에 반응하는 캐릭터들, 그 반응에서 발산되는 웃음을 경험한 적 있는가. 상황극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코미디라고 할까, 작가 미타니 코우키의 재치에 박수를 보낸다.
개인적으로 <연극열전> 작품이라면 작품성이나 배우들의 실력 모두 신뢰하는 편이라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갔지만 기대 이상의 뭔가를 얻은 이 만족감, 그것은 바로 '행복'이다. 하루 동안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은 모두 '사랑' 때문이랄까. 이성 간의 사랑, 가족 간의 사랑… 사랑이 있는 곳은 따뜻하다. 그 따뜻함은 관객들에게 '행복'을 덤으로 선사한다.
연극 '너와 함께라면'은 실화가 아니다. 이것이 '남의 얘기 옆집 얘기'라서 웃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가. 우리 삶 속에 꼭 이런 상황은 아니지만, 이같이 어이없는 일,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는 경우는 없는가. 어려운 상황, 몰리고 쫓기고 배신당한 상황 속에서 당신은 어떤 반응을 하는가? 그 반응에 따라 당신 삶도 다르게 바뀔 수 있음을 생각해보았는가.
이 밖에 이 연극에서 절대 빠트려서는 안 될 하나의 관전포인트는 바로 나가시 소면을 먹는 장면. 흐르는 물에 국수를 띄워먹는 일본 전통 풍속으로, 이 장면은 모든 관객의 미각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면이다. '나'도 무대 위에 뛰어올라 젓가락질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하지만 배우들은 질려서 평생 국수를 찾지 않을 것이란다). 여기서 또 한 번 대가족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국수를 띄워 주는 사람, 물을 붓는 사람, 가장 관건은 그 속도에 맞춰 젓가락을 놀리는 사람, 순서대로 서로에게 양보하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 자칫하면 극중에서처럼 계단같은 긴 대나무통이 흐트러지며 기분을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다.
여기서 구구절절 배우들의 연기력을 논하지는 않겠지만 송영창과 서현철 배우의 연기에 찬사가 절로 나온다. 송영창, 서현철, 추귀정, 이세은, 김유영, 박준서, 최정헌, 조지환 등 배우들의 명품연기와 찰떡호흡으로 이뤄지는 연극 '너와 함께라면'은 오는 10월 31일까지 대학로문화공간 이다1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