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세계 굴지의 다국적 제약사들이 자행한 불법 리베이트 실체가 낱낱이 드러났다. 이들은 겉으로는 '윤리 경영'을 외쳤지만, 뒤로는 다양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해 충격을 주고 있다. 해당 제약사들은 이미지 추락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4일 식사 접대와 강연료 지급 등 여러 우회적 수단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다국적 제약사 5개사와 국내 제약사 1개사에 과징금 110억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업체별 과징금은 한국얀센 25억5천700만원, 한국노바티스 23억5천300만원,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 23억900만원, 바이엘코리아 16억2천900만원, 한국아스트라제네카 15억1천200만원, CJ제일제당 6억5천500만원 등이다.
그런데 이번 리베이트 사건 조사에 걸린 기간은 무려 2년 6개월 이상이었다. 공정위는 2009년 1월에 첫 조사를 시작했지만 수법이 교묘하고 증거를 찾기가 어려워 조사 기간이 이처럼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이 리베이트를 제공한 수법은 ▲ 식사접대 및 회식비 등 지원(349억원4000만원) ▲ 강연료·자문료 방식의 지원(108억원6000만원) ▲ 해외 학술대회 및 국내학회 등 지원(43억9000만원) ▲ 시판후조사 명목의 지원 (19억원2000만원) ▲ 물품제공 및 골프접대(6억원) ▲ 시장조사 사례비 명목의 지원(2억7000만원) 등이었다. 이렇게 리베이트를 제공하면서 처방을 부탁한 품목은 ‘디오반’, ‘아프로벨’ 등의 고혈압치료제를 포함한 25개 제품이다.
이번에 적발된 제약사들의 리베이트 방법은 다른 제약사들이나 일반 회사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수법이 너무나 교묘해 경약을 금치 못할 수준이었다. 예를 들어 이들은 의사들의 영향력이나 자사에 대한 우호도 등을 분석해 △지지자(Advocate) △충성스러운(Loyal) △사용자(User) △시도해본(Trial) △인식한(Aware) △비사용자(Un-user) 등 6개 그룹으로 분류한 뒤, 관련 주제에 전문성이 있는 의사가 아니라 자사 의약품 판촉에 영향력 있는 의사들을 강사로 위촉해 강연료를 지급하는 등 교묘한 수단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이러한 리베이트는 본사 차원에서 수립된 판촉계획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도 충격이었다.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본사가 중심이 되어 전략적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해왔던 것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2006년 8월부터 2009년 3월 자사의 의약품 처방을 늘리고자 병·의원과 의사들에게 모두 530억원대의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유형별 리베이트 규모는 식사 접대와 회식비 지원이 349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일부 회사는 의사 외에 간호사와 병원 행정직원을 대상으로 판촉을 위해 접대했다. 이 가운데는 부부동반 이벤트를 명목으로 1천만원의 돈을 지급하고 그 대가로 2억원의 약 처방을 이끌어낸 경우, 제약사의 지원으로 6일간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동영상 시청 1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스파, 버블쇼 등으로 대체한 경우도 있었다.
또 강연료·자문료 방식으로 108억원을 지원했다. 특히 관련 주제에 전문성이 있는 의사가 아닌 자사 의약품 판촉에 영향력 있는 의사를 위촉해 강연료를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강연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부적절한 장소에서 소수인원(2~10명)을 대상으로 형식적인 강의를 진행했으며, 강사의 강의자료는 제약사가 직접 작성·제공했다. 물론 강사료는 수백만원대였다.
이밖에 해외 학술대회와 국내학회 등에 44억원을 리베이트로 제공했고, 시판 후 4~6년이 지나 약사법상 시행 의무가 없는 경우에도 시판 후 조사(PMS) 명목으로 19억원을 지원했다. 조사도 전담부서인 의학부서가 아닌 마케팅 부서에서 시행돼 리베이트로 판단됐다.
공정위 김준하 제조업감시과장은 "이들이 직접 현금이나 상품권을 지급하는 대신 강연료, 시판 후 조사 등 합법을 가장해 교묘하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리베이트를 줬다"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특히 세계 굴지의 다국적 제약사들도 우리나라 제약업계의 그릇된 관행을 그대로 따라 음성적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해 왔음을 확인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연간 2조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약가인하 계획을 내년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한 가운데 이번 리베이트 조사결과가 발표돼 제약업계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번 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이 아니냐는 제약업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 자체가 문제 제공의 원인이기에 정부를 원망만 할 수는 없는 입장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