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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이건희 경영권 노림수에 두 번 당했다

사상 최대 개인 소송이라 할 수 있는 삼성가 분쟁의 실마리를 찾는 과정에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이 소송 뒤에는 경영권을 둘러싼 CJ 이재현 회장과 삼성 이건희 회장의 오랜 사연이 숨겨져있다.

지난 66년 사카린 밀수사건의 오욕을 뒤집어 쓴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분노는 상속 예정자였던 이맹희 전 제일비료회장(CJ 이재현 회장 부친)을 영원한 패배자로 만들어 버렸다.

이병철 회장은 무능한 이맹희를 두고두고 불신한 끝에 삼남 이건희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건희를 후계자로 점찍어 뒀던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이건희 회장은 어부지리로 삼성의 대권을 물려받은 셈이다.

이 회장이 사망하자 경영권은 확고하게 이건희 회장 쪽으로 기운 듯 했다. 이참에 이건희 회장은 불안한 경영권에 쐐기를 박는데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93년 백설햄 유통기한 조작사건이 터졌다.

대구에서 제일제당 백설햄을 납품하던 업자가 몰래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의 라벨을 약품으로 지우고 위조 날짜를 붙여 판매하다 MBC뉴스카메라에 포착된 사건이 터진 것이다.

당시 국내 육가공식품 시장은 백설햄 브랜드를 앞세워 제일제당(현 CJ)이 장악하고 있었다.

불미스런 사건이 MBC뉴스데스크를 타고 한달 내내 전국을 뒤 흔들었다.

마침 일본 도쿄에 출장 중 TV뉴스를 접한 이건희 회장은 대노했다. 이 회장은 구상중이었던 식품유통업의 계열분리를 과감신속하게 단행했다.

앓던 이를 뺀 기분이었을 것이다.

앞서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어부지리 경영대권을 거머쥔 이건희 회장은 제일제당의 백설햄으로 자리를 확고하게 굳히게 됐다.

두 번의 경영권 타이틀 매치에 동원된 무기는 아이러니하게도 CJ의 주력사업인 식품이 빌미가 됐다.

이건희 회장의 이이제이(夷以制夷) 전략은 가히 삼국지에 나오는 어느 영웅호걸 못지 않다.

결론적으로 이재현 CJ회장은 물론 아버지 탓도 있지만 자중지란으로 경영권을 잃어 버렸던 셈이었다. 더욱더 뼈아픈 점은 자신들의 주무기인 식품관련 사건이 빌미가 되어 경영권을 빼앗겼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이런 영욕의 역사가 있기에, 현재 일어나고 있는 재산분쟁 이면에는 경영권을 둘러싼 치밀한 공방전이 숨어있다.

여기에서 "한푼도 줄 수 없다", "소송은 대법원, 헌법재판소까지라도 갈 것"이라며 이건희 회장이 이례적으로 강경하게 치고 나오는 언급 속 행간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이 과거 두번의 이이제이의 전략으로 또 한 번 완승을 거둘지 아니면 이재현 회장이 이번에는 또 당하지 않는다는 권토중래의 묘수를 찾을지 자못 흥미진진한 무협지를 읽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