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시내 기자] 일본 기업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이병목(89) 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10여명이 강제노동에 대한 손해배상과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라며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일본 기업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며 피해자들의 패소로 판결한 1,2심 판결을 뒤집고 사건을 부산고법과 서울고법으로 파기 환송했다.
원고들에 대한 일제의 강제징용 피해가 발생한 지 70여 년, 국내에서 소송을 낸 지 12년 만에 마침내 승소 판결을 받은 것.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피해를 입은 우리나라 국민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것을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944년 일제에 의해 미쓰비시 중공업(5명)과 신일본제철(4명)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하다 이듬해 연합군의 공습과 원자폭탄 투하로 임금도 받지 못한 채 크게 다친 몸으로 귀국한 이씨 등 9명은 일본 재판부에 강제 노동에 대한 손해배상과 받지 못한 체불 임금을 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손해배상 청구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 등으로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가 확정됐고, 국내 법원에도 같은 소송을 제기했지만 국내 1,2심 재판부도 같은 이유로 패소 판결을 내리자 대법원에 상고했다.
앞서 일본 최고법원과 국내 1,2심 재판부는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했다는 이유 등으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일본에서 제기한 같은 내용의 소송에서 일본 재판소는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사실이 있는데, 일본 재판소의 판결이유에는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전제로 해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한반도와 원고 등에게 적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평가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며 “이런 일본판결은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므로 그 효력을 승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의 해석을 통하여 원고들의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 신일본제철 주식회사에 대한 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체결에 의해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 회사는 구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 구 일본제철 주식회사와 각각 법적으로 동일한 회사로 평가되므로 원고들의 청구를 거절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 “원고들의 청구권이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하였다는 피고들의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일본 기업에 실질적인 구속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