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조영진 기자] 시공능력 38위의 극동건설이 부도가 난 가운데 이미 중대형 건설사 6곳 중 1곳은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는 등 중대형 건설사의 도산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경기 침체로 적자 폭이 점점 커지며 자금 사정이 나빠지자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는 건설사가 늘어나면서 투자자들은 건설사 발행 회사채를 외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금조달을 위한 회사채 발행에 필요한 신용평가 등급 부여를 포기하는 건설사들이 속출하고 있다.
건설경기 부진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 중단 등으로 건설사의 빚이 눈덩이처럼 쌓이고 자금조달이 계속 어려워지면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건설사는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공시 실적이 있는 시공능력 상위 50대 건설사 중 8곳이 자본잠식에 빠졌다.
벽산건설, 풍림산업, 남광토건은 자본금을 까먹고 부채로 버티는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거래소의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자본잠식률이 50% 이상이면 관리종목이 되고 상장폐지 가능성이 커진다.
또 시공능력 16위인 금호산업의 자본잠식률이 87.2%에 달하는 것을 비롯해 진흥기업(42.2%), 동아건설산업(4.8%), 49위의 한일건설(78.2%), 삼호(6.8%) 등 5곳이 부분 자본잠식 상태에 있었다.
이 외에도 시공능력 100위권 내에서 우림건설(71위), 범양건영(84위)이 완전 자본잠식 상태이고 중앙건설(89위)이 부분잠식(20.1%)에 빠졌다.
기업은 적자가 커질수록 자본금을 소진하고 자본금이 바닥나면 도산하게 된다. 부동산 경기 부진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 중단 등으로 건설사들의 수주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중대형 건설사들의 어려운 상황은 부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50대 건설사의 부채는 6월 말 현재 157조9000억원 수준으로, 이는 유럽 재정위기 전인 2010년 말(153조3000억원)보다는 4조6000억원 많은 것이다.
이 기간 삼성물산 부채가 8조9000억원에서 13조7000억원으로 증가한 것을 비롯해 건설사 31곳의 부채가 늘었다.
특히 타인자본에 대한 의존도를 보여주는 부채비율이 200%가 넘는 곳이 30곳에 달했다.
금호산업의 부채비율이 무려 2899%였고 한일건설 1423%, 34위의 삼부토건 1045%, 50위의 울트라건설 761%, 삼호 744%, 40위 동양건설산업 725%, 13위 쌍용건설 692%, 36위 고려개발 682%, 23위 동부건설 547% 등이었다.
부채비율은 타인자본에 대한 의존도를 보여주는 기업의 건전성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이 비율이 높을수록 재무구조가 불건전하다는 의미다.
건설사의 부채는 불안한 경기 여파로 계속 누적돼 심각한 수준인데 건설사가 빚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면 결국 파산해 회생절차를 신청하게 된다.
앞으로 건설 경기가 내리막길을 벗어나지 못하면 법정관리를 신청하거나 무력화하는 기업이 연달아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극동건설에 이어 덩치가 큰 다른 건설사의 부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 들어 풍림산업, 삼환기업, 남광토건, 벽산건설, 극동건설 등이 잇따라 법정관리를 신청한 상태다.
이들 상장사는 주식 시장에서도 퇴출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법정관리 신청을 개시하면서 관리종목으로 지정됐고 요건에 맞으면 상장 폐지된다.
거래소 관계자는 "높은 부채비율이 관리종목 지정이나 상장 폐지로 즉각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부채 심화가 자본잠식, 기업회생절차 개시로 이어지면 결국 주식 거래에도 악영향을 주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건설사들은 부동산시장 침체에 따른 일감 감소뿐만 아니라 자금조달 어려움까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로 인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건설사가 늘어나면서 투자자들은 건설사 발행 회사채를 외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금조달을 위한 회사채 발행에 필요한 신용평가 등급 부여를 포기하는 건설사들이 속출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 정봉수 수석애널리스트는 "작년 시공능력 기준으로 100대 건설사 중 27곳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밟고 있다"며 "이들 외에도 신용평가 받는 것을 중단한 건설사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스신용평가 관계자는 "회사채를 발행하는 건설사에 한해 신용평가 등급을 부여하는데 올해는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는 기업들까지도 발행을 유보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을 밟는 건설사는 아예 회사채 발행을 위해 필요한 신용등급을 부여받지 못하는데, 이 단계에 있지 않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건설사들이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신세나 마찬가지인 수준으로 전락한 셈이다.
이는 건설사들이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기는 하지만 건설업계 전반적으로 신용이 떨어져 철저하게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투자자들은 건설업 전반에 대한 우려로 건설사 회사채는 거들떠보지 않고 있다.
실제로 기관투자자들은 신용등급 `A' 이상의 우량 건설사 회사채만 주로 편입하고 있고, 신용등급이 트리플B(BBB) 이하인 건설사는 회사채 발행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기업을 포함해 47개 건설사에 대한 신용등급을 매겼는데 이 중 29.7%인 14개 건설사 신용등급이 `BBB' 이하였다. 한국신용평가가 등급을 매긴 34개 건설사 중에는 10곳의 등급이 `BBB+'이하였다.
한국신용평가 류승협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건설사 자금 사정이 좋지 않으면 회사채 발행이 늘어야 하는데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어모으지 못해 발행 업체가 줄었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중대형 건설사들의 자금 사정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어 건설업계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덩치가 큰 업체가 부도가 나면 이는 개별 기업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중견 건설사가 사정이 어려워져 해외수주가 줄어들면 국내 경쟁에 더 집중하게 되고 결국 중소 건설사의 연쇄부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은 시장에서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까지 막혀 있어 사정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시장에서 건설사 회사채를 외면해 회사채 발행을 위한 신용등급조차 받지 못하는 곳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건설경기는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어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건설사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9월 건설기업 경기실사지수(CBSI)가 전월보다 11.6포인트나 오른 70.6을 기록했다.
여름 비수기가 끝나고 `9·10 부동산 대책'이 나온 데 힘입어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아직도 건설경기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CBSI가 기준치인 100을 밑돌면 현재 건설경기를 비관적으로 보는 기업이 낙관적으로 보는 기업보다 많다는 뜻이고 100을 넘으면 그 반대인데, 지금의 수치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실질적인 건설 수주 역시 부동산 시장이 부진한 탓에 혹한기를 겪고 있다.
통계청의 8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8월 건설기성은 작년 같은 달보다 7.3% 줄었고 건설수주는 29.9% 급감했다. 건설기성은 조사 대상 기간에 이뤄진 시공실적을 나타내고 건설수주는 기간 내에 공사를 수주한 규모이다.
경기동행지표인 건설기성이 부진한 데다가 경기선행 성격을 띠는 건설수주마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대형 건설사의 경우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해외 수주가 위축됐고 국내 시장에서도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이경자 연구원은 "건설업계가 불황 여파로 올해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미분양과 거래부진은 대형사보다 중소형사에 더욱 치명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