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안진석 기자] 유럽 재정위기와 가계부채 등으로 험난한 한 해를 보낸 한국 경제에 내년에도 이들 악재가 최대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유로존 위기가 내년에도 이어지면서 세계 경기 회복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전문가들은 적절한 경기부양 정책과 기업 경쟁력 강화로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국내 경제연구기관과 증권사들은 15일 대외 악재로는 유럽 재정위기, 대내 악재로는 가계부채를 내년 한국 경제의 최대악재로 꼽았다.
대외적으로는 유럽 재정위기가 해결되지 않는 한 중국과 미국의 경기 회복이 쉽지 않아 결국 한국의 수출 둔화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국내적으로는 임계점에 달한 가계부채가 소비둔화로 이어져 내수를 짓누를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
한국금융연구원 이명활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은 "내년에는 유럽 재정위기가 가장 큰 불안요인"이라며 "내년에는 이탈리아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리스 역시 계속 골칫거리로 남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최성근 연구원은 "유럽 위기가 가장 걱정되며 특히 4월 대규모 부채 상환이 돌아오는 스페인을 잘 봐야 한다"며 "4월을 잘 넘기면 유럽위기가 진정되겠지만 불안심리가 가중된다면 위기가 장기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내년에도 그리스가 계속 골칫거리로 남은 상태에서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다시 위기국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것.
유럽 위기가 해결되지 않으면 중국과 미국의 경기 회복이 쉽지 않고, 특히 중국의 경기 위축으로 우리나라의 수출도 타격을 입게 된다. 따라서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도 회복이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한국투자증권 전민규 연구원은 "유럽 경기 회복 지연이 중국 수출 부진을 가져왔다"며 "중국 수출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한국으로서는 여파가 미칠 수밖에 없는 경제 구조"라고 진단했다.
최 연구원은 "미국과 중국 경제가 바닥을 치는 듯하지만 유럽위기가 잘 해결되지 않는다면 회복세도 횡보선에 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LG경제연구원 이근태 연구위원은 "유럽의 재정불안이 해소되고 그에 따라 중국과 선진국 소비가 얼마나 회복되느냐가 중요하다"라며 "선진국이 살아나야 우리 기업도 살아난다"라고 말했다.
또 중국이 수출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내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는 점도 국내 수출기업에게는 좋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가계부채 문제가 가장 큰 골칫거리라는 의견이 많다.
소비심리가 개선돼야 하는데 가처분소득이 가계부채를 갚는 데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는 6월 말 현재 922조원 수준으로 `1000조원'을 앞두고 있다.
대신경제연구소 김윤기 경제조사실장은 "내년에도 가계부채가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며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데 부채가 누적되면 경제에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대외 불안요인으로 유럽 재정위기 외에도 미국의 `재정절벽', 중국의 정치적 혼란, 중국 경제의 저성장과 경착륙 우려국제적 갈등,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 등이 뽑혔다.
특히 미국의 `재정절벽'가 불안요소 꼽히고 있다. 심각한 충격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우세하지만 증세를 주장하는 민주당과 감세 유지 방침인 공화당의 견해차가 여전한 가운데 신용평가사들은 재정절벽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국내 불안요인으로는 가계부채 외에 부동산 침체, 원·달러 환율 하락, 양극화와 청년실업 문제, 대선을 전후한 정치적 혼란 등이 꼽혔다.
특히 가계 부채와 부동산 침체가 급격히 악화되면 금융시장 전반에 큰 충격을 미칠 수 있는데, 부동산 시장은 쉽게 회복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대투증권 소재용 연구원은 "세계 경제의 개선이 나타난다면 국내 주택시장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내년에도 큰 폭의 성장을 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설명했다.
또 선진국들의 유동성 공급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 우려와 원화 강세도 위험 요소다. 원화 강세가 지속되면 수출기업들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아직 가계 부채와 경기 위축의 악순환이 본격화되지 않고 있지만 대외 경기 악화로 국내경기가 나빠지면 악순환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배상근 경제본부장은 "가장 큰 문제는 내수 회복 지연"이라며 "성장률이 높지 못하니 가계부채가 과중해지고 소비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데, 이는 기업들의 설비 투자에도 영향을 미친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환율 문제도 수출기업에 고통을 줄 것"이라며 "수출 기업 중에서 환율과 상관없이 가격 경쟁력이 강한 곳은 일부에 제한돼 있으며 대부분 기업에는 환율이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내년 한국경제의 불안요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재정확대를 통한 공격적인 경기부양, 기준금리 인하, 환율 방어 등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국내 기업들이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공격적인 재정 확대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내년 하반기에 경기 회복이 예상되는 만큼 상반기에 이러한 정책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총수요를 증가시킬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삼성증권 이승훈 연구원은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에 빠질 수 있는 우려가 있고 지금처럼 원화 강세가 지속해 물가가 내려가면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한국은행이 공격적으로 금리 인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연구원은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며 "우량 금융기관보다는 저축은행, 대부업체 고금리 금융기관 부채가 늘어났기 때문에 저금리로 갈아타는 대책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재정정책은 시기상 현 정부에서 당장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에 대외경제환경에 따라 새 정부가 재정확대 등의 경기 부양 정책을 펼 것으로 기대됐다.
개별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도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현대증권 오성진 리서치센터장은 "국내외 악조건에서도 삼성전자처럼 경쟁력을 갖고 있다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며 "기업들이 외국에 진출해 활약할 수 있도록 개별 기업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 본부장은 "지금은 물가가 안정적인 상황인데, 물가가 상승한다고 해도 수요가 아닌 공급 요인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총수요를 어떻게든 끌어올릴 수 있는 인위적인 정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부채 해결을 위한 대책도 꾸준히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최성근 연구원은 "국내 가계부채가 상당히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악성 부채에 대해서는 상환을 연장해주거나 부채 이자를 고정금리로 하는 등 부채 상환을 다양한 경우로 나눠서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민금융을 활성화하고 기업의 투자가 살아나고 고용이 늘어나 가계 소득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로 변화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