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난이 심화하면서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의 중저가 아파트 구매에 나서는 수요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기존 전셋집에 2년 더 눌러앉는 수요가 크게 늘면서 전세 품귀가 심화했다. 전셋값마저 급등하자 전세난을 피해 '영끌'로 매매에 나선 세입자들이 중저가 아파트 매수에 나선 영향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서울 아파트 거래 2개월 연속 증가세…구로·금천·성북 등 주도
14일 서울부동산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아파트 거래는 4천436건으로, 이미 10월 거래량(4천369건)을 넘어섰다. 아직 신고기한(30일)이 절반가량 남아있는 것을 고려하면 11월 거래량은 더 늘어나 5천건을 넘길 가능성이 크다.
서울의 아파트 거래는 3∼5월 3천∼5천600건 수준에서 6월 1만5천585건, 7월 1만643건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뒤 정부가 6·17대책과 7·13대책으로 수요를 묶고 8·4대책으로 공급 신호를 보내자 8월 4천979건, 9월 3천763건으로 급감했다.
이후 10월 거래량은 4천369건으로 반등했고, 지난달도 전달 거래량을 넘어서서 2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새 임대차법 시행으로 기존 전셋집에 2년 더 눌러앉는 수요가 크게 늘면서 전세 품귀가 심화하고 전셋값 급등에 전세 수요 일부가 매매로 전환된 것이 거래량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지역별로는 지난달 구로구의 아파트 거래가 366건으로 전달(234건)보다 56.4% 증가해 서울에서 거래량이 가장 많이 늘었다.
이어 강남구 35.8%(215건→292건), 금천구 30.9%(68건→89건), 성북구 17.3%(162건→190건), 도봉구 10.9%(201건→223건) 등의 순으로, 거래량 상승률 상위 5개 구 가운데 강남구를 제외한 4곳이 모두 상대적으로 저렴한 외곽 지역이었다.
강동구 10.2%(196건→216건), 노원구 9.8%(397건→436건), 관악구 5.5%(128건→135건), 성동구 3.5%(142건→147건), 마포구 3.4%(177건→183건), 광진구 2.8%(72건→74건), 송파구 2.6%(229건→235건) 등 총 12개 구의 거래량이 이미 전월을 초과했고, 나머지 13개 구는 아직 전월 거래량 이하에 머물렀다.
매수세가 붙으며 이들 지역의 집값도 오르고 있다.
거래량 상승률 1위인 구로구에서는 개봉동 개봉푸르지오 전용면적 84.83㎡가 지난달 21일 8억3천300만원(13층)에 이어 닷새 뒤인 26일 8억4천만원(4층)에 각각 신고가로 거래됐다.
해당 평형 아파트는 1월 6억7천만원(11층)에서 3월 7억2천만원(25층)으로 처음 7억원을 넘겼고, 8월 8억3천만원(25층)으로 8억원을 넘겨 1년 사이 1억7천만원이 올랐다.
성북구 길음동 길음뉴타운1단지(래미안길음1차) 84.96㎡는 지난달 20일 10억1천500만원(6층)에 계약서를 써 처음으로 10억원을 돌파했다. 6월 9억원을 처음 넘긴 뒤 5개월 만에 1억원이 더 오른 것이다.
도봉구 창동에 있는 동아청솔아파트의 중소형 평형인 59.76㎡는 지난달 16일 7억4천만원(4층)에 신고가로 거래되며 연초 대비 1억5천만원 안팎으로 올랐다.
▲파주·화성시 한달 새 최대 2억원 증가
경기도의 11월 아파트 거래량도 이미 10월 수준을 넘어섰다. 경기부동산포털에 따르면 경기도 아파트 거래는 지난달 1만8천13건으로 10월(1만7천700건)보다 1.8% 증가했다. 신고기한이 아직 남아 있어 11월 거래 건수는 더 늘어날 것이 확실하다.
경기도 아파트 거래량 역시 서울처럼 10월(1만3천557건→1만7천700건)에 이어 11월까지 두 달 연속 증가했다.
지역별로 보면 고양시의 아파트 거래가 지난달 2천479건으로 10월(1천395건)보다 77.7% 늘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고양시 거래량은 10월에는 '풍선효과'로 거래가 폭증했던 김포시(2천394건)에 이어 경기도 2위(1천395건)에 올랐으나 지난달 김포가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되는 등 영향으로 11월에는 김포(1천32건) 등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지난달에도 규제지역 지정을 피한 파주시의 아파트 거래가 11월 1천376건으로 전월 대비 32.8%(340건) 증가했다.
의왕시 29.2%(137건→177건), 안양시 24.3%(563건→700건), 동두천시 21.2%(151건→183건), 의정부시 12.4%(747건→840건), 화성시 8.9%(1천174건→1천279건), 성남시 9.5%(681건→746건) 등의 순이었다.
지난달 경기도에서 거래가 1천건 이상인 곳은 고양·파주·화성·김포시와 함께 용인시(1천601건), 수원시(1천377건) 등 총 6곳이었다.
6곳 모두 서울과 인접해 있고 교통이 편리해 서울 출퇴근이 가능한 곳으로, 서울의 대체 주거지로 꼽히는 곳이다.
이들 지역의 집값도 강세다.
고양시에서는 일산서구 주엽동 강선마을 보성아파트 84.62㎡가 지난달 17일 6억원(7층)에 신고가로 거래되며 처음 6억원을 넘겨 한 달 사이 5천만∼1억원, 연초 대비 1억5천만원 안팎으로 올랐다.
파주시에서는 목동동 운정신도시 센트럴푸르지오 84.99㎡가 지난달 26일 9억1천만원(11층)에 신고가로 매매 계약이 체결되며 한 달 전보다는 2억원 가까이, 연초와 비교하면 3억∼4억원이 올랐다.
화성시 청계동 동탄역시범우남퍼스트빌 84.94㎡의 경우 지난달 28일 12억원(층)에 거래되면서 6월 10억원(13·15층)에 거래된 뒤 5개월 만에 2억원이 더 뛰었다.
▲주담대·신용대출 최대폭 증가
전세보증금으로 채워지지 않는 아파트 매수 자금은 주택담보대출은 물론 신용대출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영끌'로 충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982조1천억원으로, 10월보다 13조6천억원 늘었다. 이는 2004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가계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잔액(715조6천억원)은 전월 대비 6조2천억원 늘었다. 전세자금 대출 증가 폭은 축소됐으나 주택 매매 관련 자금 수요가 이어졌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신용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타대출(잔액 265조6천억원) 역시 전월 대비 7조4천억원 증가해 2004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청약시장서 중대형 아파트 인기 고공행진
청약 시장에서 중대형(전용면적 85㎡ 초과) 아파트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14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중대형 아파트 1순위 청약 경쟁률은 199.6대 1로, 지난해 경쟁률(38.4대 1)의 5.2배에 달했다.
2014년만 하더라도 서울 중대형 아파트의 1순위 청약 경쟁률은 2.8대 1에 그쳤다. 중대형의 인기가 6년 새 71배 이상으로 상승한 셈이다.
서울에서 중대형 아파트 공급 물량은 2014년 4천317가구에서 올해는 지난 11일까지 3천290가구로 감소했다.
이런 공급 감소세와 코로나19 확산으로 넓은 실내 공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점도 중대형 아파트의 인기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정부의 각종 부동산 규제 강화로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선호도가 커지는 점도 중대형 아파트의 인기에 영향을 미쳤다.
청약이 내 집 마련의 최선책으로 부각되면서 가점이 부족한 예비 청약자들이 중대형에 대거 청약통장을 던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전용 85㎡를 초과하는 민영주택 기준으로 투기과열지구는 공급량의 50%, 조정대상지역은 75%가 추첨을 통해 당첨자를 선정하기 때문이다.
올해 중대형 아파트의 청약 경쟁률은 서울 외에도 세종(153.3대 1)과 경기(116.2대 1)에서 세자릿수를 기록했다. 지난해 보인 경쟁률 대비 각각 2.7배, 3.0배로 상승한 수치다. 전국적으로도 올해 중대형 아파트 1순위 청약률(64.0대 1)은 작년 경쟁률(30.6대 1)의 2배가 넘게 뛰었다.
반면 중대형 아파트 물량은 감소세다. 지난 몇 년간 1·2인 가구 증가, 혁신 설계, 높은 환금성 등으로 건설사들이 중대형보다 소형 면적 중심으로 단지를 구성해왔기 때문이다.
전국의 중대형 아파트 공급 물량은 2014∼2016년 3만 가구를 웃돌았다가 2018년 1만9천 가구까지 떨어졌고, 올해는 2만 가구를 겨우 넘긴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형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아왔던 중대형 면적이 희소성, 코로나19, 똘똘한 한 채 현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며 "올 연말 분양시장에서 중대형 면적을 공급하고 있는 단지들이 많지 않아 높은 경쟁률 행진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