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일가가 동부하이텍의 재무구조개선 명목으로 동부한농을 매각하면서, 소액주주들의 선택권은 배제한 체 안정적인 수익이 창출되는 동부한농의 지분을 확보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4일 동부하이텍 이사회는 동부한농 주식 5000만주 전량을 김준기 회장의 가족과 계열사, 재무적투자자(FI)에게 매각키로 결정한 바 있다.
이와 관련,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 소장은 "동부하이텍이 동부한농 주식 매각대금으로 차입금을 상환함으로써 동부하이텍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이번 결정으로 동부하이텍은 동부한농을 완전히 잃게 되고 사실상 김준기 회장 일가가 지배권을 독점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동부그룹은 김준기 회장이 아닌 동부CNI가 최대주주가 되고, 이는 동부CNI를 중심으로 한 지주회사 설립 작업의 일환이라는 입장이다. 또 재무적 투자회사에 지분 60%를 매각하므로 회장 일가가 아니라 외부에 매각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그룹 측은 밝혔다.
하지만 김 소장은 "동부한농의 지분을 확보하게 된 동부인베스트먼트는 김준기 회장의 개인회사이며, 동부CNI 역시 상장회사지만 아들 김남호씨가 최대주주로 지배주주 일가가 42.34%를 보유한 그룹 지배권의 핵심 계열사다"고 밝혔다. 채이배 공인회계사 또한 "재무적 투자자들이 지배권을 행사하지는 않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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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부한농의 지분변화 |
동부한농은 동부하이텍이 올해 6월 농업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설립한 회사로 동부하이텍이 지분 100%를 보유했었다.
지난 8월 동부한농은 동부케미칼을 흡수합병했으며, 동부케마칼을 100% 보유하고 있던 동부CNI(구 동부정밀화학)는 합병대가로 동부한농의 지분 21.68%를 취득하게 됐다. 동부케미칼은 동부정밀화학이 8월 작물보호와 바이오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한 회사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동부하이텍과 합병한 동부한농은 동부하이텍의 재무구조개선에 이용된 후 다른 주주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지배주주 일가에게 넘어가는 셈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2007년 당시 동부한농은 좋은 회사였는데 동부하이텍이 반도체 사업 적자로 어려워 합병됐다"며 "농약·비료회사와 반도체 회사의 말도 안 되는 합병에 동부한농 주주들의 반발이 있었다"고 덧붙혔다.
김 소장은 "2007년 당시 동부하이텍과 구 동부한농의 합병으로 주식매수청구권이 발생했지만 사실상 저평가된 시가에 따른 주식매수청구가격은 주주들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며 "이번 동부한농의 분할 시에도 물적분할을 선택함으로써 역시 주주들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동부하이텍이 반도체 사업부문의 적자를 농업사업부문의 흑자로 메워왔으며, 앞으로도 동부한농은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채이배 공인회계사는 "동부하이텍이 자회사인 동부한농을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고 매각하거나 상장 후 매각했다면, 이번 김준기 회장 일가 및 재무적 투자자에게 매각하는 것보다 이익이 클 수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비상장회사인 동부한농이 저평가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동부하이텍이 공시한 주식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현금흐름할인법으로 주식을 평가하고 있는데, 유사업종 상장회사의 재무지표를 살펴보면 동부한농의 주식평가액은 상대적으로 낮다.
채 회계사는 "남해화학의 EPS(주당순이익)는 508원인데 주가는 1만9250원으로 PER(주가수익비율)은 28.42다. 하지만 동부한농의 EPS는 1548원인데 주가는 7097원으로 PER은 3.44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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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부한농 유사업종 상장회사의 재무지표. 동부한농의 주가는 주식평가보고서상의 주당평가금액이며, 적자가 실현된 조비의 재무지표는 제외함. ※자료=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
올해 9월 기준으로 동부한농과 남해화학의 BPS(주당순자산가치)는 각각 7480원, 7771원으로 남해화학이 조금 앞선다. BPS는 기업의 순자산을 발행주식수로 나눈 것으로, 값이 클 수록 자기자본의 비중이 크고 실제 투자가치가 높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기업의 순이익을 발행주식수로 나눈 값인 EPS는 동부한농이 1548원으로 남해화학보다 1040원이나 많다. EPS가 높을 수록 주식의 투자가치는 높은데, 그럼에도 주가는 남해화학이 2배 이상 비싸다.
김선웅 CGCG 소장은 "동부한농은 재무적 투자자가 60%의 지분을 매입했으므로, 일반적으로 투자회수를 위해 수년 내에 상장 될 가능성이 있다"며 "만일 상장이 되면 김준기 회장 일가는 구조조정을 위해 내놓았던 자금을 회수하고 상당한 상장차익을 향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채이배 회계사도 "동부한농은 원래 상장사였으므로, 재상장 후에 매각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본다. 상장은 최대한 서두르면 6개월이면 된다"며 "차선책이라면 남해화학 등과 같은 관련업종 회사를 찾아 보다 비싸게 지분을 파는 것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