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조동일 기자] 2011년 가계대출과 대기업 대출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중소기업 대출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직접 대출 억제를 위해 나설 정도로 가계대출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중소기업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가 더 힘들어졌다.
이는 세계 경기 불황이 국내 기업에 큰 충격을 주면서 중소기업들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말 현재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건설, 조선, 해운 등에서 부실기업 속출로 인해 1.83%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 말(1.7%)보다 높아졌다.
자산건전성을 고려해야 하는 은행으로서는 중소기업 대출을 꺼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 올 때 '중소기업 우산'을 빼앗는 은행의 악습이 재연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 하나, 국민, 우리, 신한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2010년 말 321조원에서 지난해 말 341조원으로 20조원이나 늘었으며, 대부분은 주택담보대출이었다.
이런 가운데 기업대출 규모를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가 컸다.
대기업은 64조원에서 78조원으로 14조원 급증했지만, 중소기업은 238조원에서 245조원으로 7조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증가액이 대기업 대출의 절반 수준이다.
중소기업 대출잔액(245조원)은 대기업 대출잔액(78조원)의 3배에 달할 정도로 자금 수요가 많은 데도 돈 빌리기는 더욱 어려워진 셈이다.
물론 수치적으로는 중소기업의 대출이 늘어났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순수한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은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은행들은 자영업자를 중소기업으로 분류해 대출액을 함께 산정하는데, 지난해 자영업자 대출은 은행들의 과열 경쟁 탓에 2010년 93조원에서 지난해 103조원으로 10조원이나 급증했다.
결국 중소기업 대출액은 자영업자 대출을 제외하면 3조원이 감소한 것이다.
맑은 날 우산을 빌려줬다가 비 올 때 거둬가는 은행의 악습이 재연된 셈이다.
은행들은 이에 대해 "상당수 업체가 중소기업을 졸업해 중견기업으로 편입된 데다 중소기업의 부실채권을 상각한 것이 대출 감소로 잡혀 대출이 많이 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정영식 수석연구원도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기업들은 은행에서 돈 빌리기가 어려워진다. 은행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대기업이나 담보가 확실한 주택대출을 선호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각 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에 보수적인 태도로 일관할 경우 경제 전체에 심각한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
`대출 축소→중소기업 경영 악화→일자리 감소→내수 악화→은행 연체율 상승→연체율 관리 위한 대출 축소'의 고리가 이어지며 모든 경제 주체에 큰 타격을 주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소비자연맹의 조남희 사무총장은 "은행의 자산건전성도 중요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중소기업의 무더기 도산 사태가 올 수 있다. 고통 분담을 위한 은행들의 적극적인 대출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