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유럽 재정위기가 본격화된 작년 10월 이후 석 달 동안 안전한 투자처를 찾아 도피한 자금은 33조4000억원 늘어났다. 위험 성향의 자금은 7조2000억원 줄었다. 안전자산에는 은행·보험 유입 자금이, 위험자산은 비은행금융기관과 증권·자산운용사 유입 자금이 포함된다.
특히 은행권에 흘러든 자금은 작년 4분기에 25조1000억원 불었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 증가액 4조6000억원의 5.5배에 이른다. 보험사 유입 자금도 같은 기간 8조3000억원 늘었다.
반면 저축은행·신협·상호금융 등 비은행금융기관으로 흘러든 자금은 3조4000억원 느는 데 그쳤다. 증권사는 해외 충격파로 한 푼도 자금이 늘지 않았다. 펀드자금을 다루는 자산운용사는 타격이 더 심했다. 10조6000억원이나 빠져나갔다.
이런 양극화 현상은 금융위기 충격에 따라 상대적으로 안전한 은행과 보험 쪽으로 시중자금이 대거 몰렸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이 진행된 저축은행에선 작년 4분기에만 3조7000억원이 빠졌다. 이들 자금은 대부분 은행권으로 옮겨졌다.
안전자산 선호심리는 올 들어 심화되는 양상이다. 신탁계정을 제외한 은행 유입 자금은 올 1분기에만 21조6000억원 늘었다. 작년 동기 유입액 6조2000억원보다 248.4%, 전분기 16조6000억원에 비해선 30.1% 많다.
금융 양극화는 사회 계층 간 빈부격차 못지않은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저축은행 등의 위축은 서민 금융의 자금 중개기능 약화를 의미한다. 이곳에 돈줄이 막히면 서민은 금리가 높은 대부업체나 제도권 밖의 불법 사금융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대부업체 대출이 올 들어 작년 같은 달보다 30∼50%씩 늘어난 것도 따지고 보면 금융 양극화의 결과다. 카드 연체율이 치솟고 사금융 폐해가 판을 치는 부작용도 낳는다.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건전한 금융 생태계를 유지하자면 금융권별 고른 성장이 필수"라며 "금융 양극화 해소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