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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0∼2세 무상보육' 포기… `복지 포퓰리즘'에 제동

[재경일보 안진석 기자] 내년 3월부터 올해 처음으로 시행된 '0∼2세 유아에 대한 전면 무상보육' 정책이 폐기된다.

대신 월 10만∼20만원의 양육보조금이 지급된다.

또 보육시설을 이용할 때 지급하는 보육비 수준을 실제 수요를 따져 종일반, 반(半)일반 등으로 차등하고 소득 상위 30%에 일부 보육료를 부담하도록 했다.

전면 무상보육 폐기는 정부 재원의 한계와 지방자치단체들의 반발 등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나, 재정한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올해 0~2세 100% 무상보육을 밀어부친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이번 무상보육 포기는 막대한 재정부담에 따른 것으로, 실제로 올해 모든 가정에 0~2세 보육료를 지원하고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차상위 계층에만 양육수당을 주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재원 부족을 이유로 하반기 들어 속속 '포기'를 선언한 바 있다. 이달 초 중앙정부가 지방 보육료 부족분 6639억원 가운데 66%에 이르는 4351억원을 대신 부담하기로 지자체와 약속하면서 가까스로 고비를 넘긴 상황이다.

또 소득과 함께 실제 수요와 관계없이 보육시설에만 보내면 100% 정부가 보육비를 지원하는 현 제도로 인해 그동안 보육시설에 아이를 보내지 않던 부모들까지 아이들을 시설에 보내는 무차별적인 시설보육 이용 현상이 나타나는 등 불필요한 복지 수요가 나오는 부작용이 나타난 것도 원인이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보육시설을 이용한 0~2세는 65만명 정도였으나 올해의 경우 78만명으로 13만명이나 늘어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 공급 부족 상황이 야기됐고, 민간어린이집들이 집단 휴업에 나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사례를 계기로 해서 인기몰이식의 복지 접근 대신 철저한 검증을 통한 합리적인 복지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복지부는 24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보육지원체계 개편 방향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소득 상위 30% 가구는 보육비 전액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전업주부 가구도 보육비 지원을 현재의 절반 수준만 받을 수 있어 `0∼2세 유아 전면 무상보육' 정책은 시행 7개월여만에 사실상 철회됐다.

대신 0∼2세 영유아를 둔 소득 하위 70% 가구(올해의 경우 4인가족 기준 약 524만원 이하)에는 보육시설 이용 여부에 관계없이 모두 월 10만∼20만원의 양육보조금이 현금으로 지원된다.

연령별로는 0세 20만원, 1세 15만원, 2세 10만원의 양육보조금을 매달 받게 된다.

지금까지는 차상위계층(소득하위 약 15%) 가운데 보육시설에 아이를 보내지 않는 가구에만 양육수당을 지급해 왔다.

이처럼 양육보조금 대상이 소득 하위 15%에서 70%로 크게 확대되면서 양육보조금을 받는 0~2세 영유아 수는 올해 11만2000명에서 65만2000명으로 54만명이나 늘어나게 된다.

양육보조금 지원 여부의 기준이 되는 소득 인정액은 소득평가액과 주택·자동차 등 재산 환산액을 더한 것으로, 올해 기준을 적용하면 4인 가구 월 소득 인정액이 524만원보다 적으면 받을 수 있다. 가구원 3명 이하는 454만원, 5명은 586만원, 6명은 642만원선이 소득 하위 70%선이다.

또 전면 무상보육이 폐기됨에 따라 내년부터는 보육료 바우처(아이사랑 카드)를 활용한 차등 지원이 이뤄진다.

전업주부 가구에는 하루 6시간 안팎의 반일반 바우처가, 맞벌이 부부·장애인 등 취약계층 가구에는 하루 12시간 내외의 종일반 바우처가 제공된다.

예를 들어 똑같이 양육보조금을 받는 소득 하위 30%라도 맞벌이 부모 가정이 0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종일반에 해당하는 55만5000원의 보육비와 양육보조금 20만원 등 75만5000원을 받지만 전업주부 가구는 반일반 보육비 33만3000원과 양육보 조금 20만원 등 53만3000원만 받을 수 있다.

다만 정부는 전업주부라도 학생 신분, 출산, 질병, 다자녀 등 아이를 종일반에 맡겨야 할 합리적 이유가 있다면 최대한 종일반 바우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종일반과 반일반을 가르는 구체적 기준과 예외 조건 등은 앞으로 법령 정비 과정에서 정하게 되지만 일단 맞벌이 인정 기준은 고용보험 의무 가입대상과 마찬가지로 '주당 15시간 이상' 지속 근로 여부가 유력하다.

다만 바우처는 양육보조금에 해당하는 10만~20만원을 빼고 지급되며, 이는 양육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소득 상위 30% 가정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소득 인정액 기준 상위 30% 가구의 경우 내년에는 0~2세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낼 때 10만~20만원 정도 자비 부담해야 한다.

만 0세 아이 한 명을 어린이집 종일반에 보내는데 모두 75만5000원이 필요하다면, 정부가 가정에 보육 바우처로 지급하는 돈은 75만5000원에서 양육보조금 20만원(현금)을 뺀 55만5000원이다. 따라서 양육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소득 상위 30%는 20만원을 자기가 부담해야 한다.

같은 소득 하위 70%라고해도 내년부터는 보육 바우처가 올해처럼 모든 가구에 똑같이 종일반 금액으로 일괄 지급되지 않는다.

맞벌이, 직업훈련자, 장애인 등 가정 양육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에는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을 종일(오전 7시반~오후 7시반) 이용할 수 있는 바우처가 제공되지만, 나머지 전업주부 등 상대적으로 시설 보육 수요가 적은 가정은 이용 시간이 짧은 반일(오전 7시반~오후 2시 또는 3시) 바우처를 받게 된다.

표준 교육·보육 프로그램인 '누리과정'이 적용되는 3∼5세 유아를 둔 가구는 내년부터 소득 수준 등에 관계없이 보육시설을 이용하면 모든 가구가 무조건 무상 보육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올해의 경우 3~5세라도 소득 하위 70%까지만 무상보육 대상이었지만 내년부터 전면 확대되는 것이다.

보육시설에 보내기 어려운 도서나 산간 벽지 등의 소득 하위 70% 가구에는 양육보조금 10만원을 지급한다.

3~5세 양육보조금 지원 대상은 17만8천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와 함께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부모가 긴급한 외출이 필요할 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일시 보육서비스'도 내년부터 시범사업으로 운영된다.

이번에 마련된 보육지원체계 개편안에 따라 내년에 드는 `만 0~2세 양육·보육액'은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4조7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올해 4조6000억원보다 1000억원 정도 늘어난 액수다.

양육보조금 지급 대상이 기존 차상위계층(소득하위 약 15%)에서 소득하위 70%가구로 크게 확대된 것을 감안하면 증가폭이 그다지 크지 않은 셈인데, 이는 보육료의 실수요를 따져 종일반과 반(半)일반으로 나눠 차등 지원함에 따라 양육보조금 증가분이 상쇄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비만 따지면 내년 양육보조금 예산은 6271억원으로 올해 1026억원보다 5245억원이나 폭증했지만, 영유아 보육료 지원액은 2조3913억원에서 2조1623억원에서 2290억원 줄었다.

만약 정부가 내년 보육 지원 체계에서 '소득에 관계없는 전면 무상보육' 원칙을 고수했다면 소득 상위 30% 가구의 0~2세에 지급할 6419억원(국비+지방비)의 양육보조금 재원을 추가로 마련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여기에다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3~5세 가정에 10만원씩 지급하는 양육보조금 역시 모든 소득 계층으로 확대하려면 766억원이 더 필요하다.

결국 100% 무상 보육을 실현하려면 내년 예산이 7185억원 정도 더 늘어나야 하는데, 이는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정부는 이 같은 재정적 어려움과 보육 실수요, 혜택의 소득별 공정성 등을 감안해 `0∼2세 전면 무상보육' 정책을 폐기했다고 밝혔으나 이 정책이 국회 주도로 추진된 점을 고려하면 국회가 정부의 새 보육정책에 동의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특히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복지 후퇴'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실질적으로 보육 지원이 줄어드는 소득 상위 30% 계층의 반발과 함께 전업 주부 가구에 대한 차별 논란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여, 차제에 복지 포퓰리즘을 지양하고 철저한 사전 검증을 통한 합리적 복지정책 수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임채민 복지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보육체계 개편으로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장기적으로 보육·양육지원의 틀을 잡기 위해 진통을 겪은 것으로 이해해 달라"면서 "국회도 취지에 공감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