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대법 "건보공단 구상금 산정 시 비급여·위자료 제외해야"... 합리적 분담 기준 제시

이겨례 기자
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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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가 화재 피해자에게 지급한 보험금 중 건강보험 급여와 무관한 비급여 치료비나 위자료 등은 건강보험공단의 구상 범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공단의 구상권이 보험급여와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는 항목에만 한정된다고 명시하며, 보험사가 지급한 배상금 중 급여 대상이 아닌 손해액의 비율만큼을 공제액으로 산정하도록 했다. 이번 판결로 불의의 사고 발생 시 공단과 민간 보험사 간의 책임 분담 및 구상금 산정 방식에 관한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될 전망이다.

대법원 3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DB손해보험과 국일고시원 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최종 확정했다. 재판부는 보험사가 피해자에게 건넨 보험금 중 비급여 치료비와 위자료, 일실수입 등 공단 급여와 성격이 다른 부분은 구상금 청구액에서 반드시 공제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는 공단의 대위권 행사가 피해자의 실제 손해액과 공단 지출 비용이 중첩되는 영역에서만 정당성을 가진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결과다.

이번 사건의 법적 분쟁은 지난 2018년 11월 9일 서울 종로구에서 발생한 국일고시원 화재 사고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화재로 고시원 거주자 7명이 목숨을 잃고 11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빚어지며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조사 결과 고시원 원장의 소방시설 관리 소홀이 피해를 키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었으며, 이에 따른 피해 보상과 책임 소재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장기간 이어졌다.

건강보험공단은 사고 부상자 9명에게 요양급여 명목으로 총 3,826만여 원을 지급한 뒤 가해자 측에 구상권을 행사했다. 공단은 가해자인 고시원 원장과 그가 가입한 DB손해보험을 상대로 공단이 대납한 치료비 전액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법적으로 공단은 제3자의 행위로 손해를 입은 가입자에게 급여를 제공했을 경우, 그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대신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기 때문이다.

피고인 DB손해보험은 피해자들과 이미 합의를 마쳐 총 5,949만 원의 보험금을 지급했으므로 추가적인 구상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보험사 측은 이미 지급한 배상금에 공단이 청구한 치료비 성격의 금액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1심과 2심은 공단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여 청구액 전액 인용 판결을 내렸으나, 2024년 대법원은 공제 금액 산정의 적절성을 이유로 사건을 파기환송하며 국면이 전환되었다.

대법원은 공단이 행사하는 구상권의 범위가 보험급여와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는 채권으로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상호보완적 관계란 동일한 사유로 발생한 손해를 메워주는 밀접한 관련성을 의미하며, 공단의 구상 범위는 공단이 실제 부담하는 급여 대상 치료비 부분에 한정된다. 따라서 공단이 부담하지 않는 비급여 치료비나 정신적 위자료, 장래 소득 손실인 일실수입 등은 구상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실무적인 공제액 산정 방식으로 '손해 비율 계산법'을 새롭게 제시하며 법리적 기준을 구체화했다. 보험금 중 공제할 금액은 피해자의 전체 손해액에서 보험급여와 무관한 손해가 차지하는 비율을 따져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체 손해가 1억 원이고 비급여와 위자료 비중이 70%라면, 보험사가 지급한 책임보험금 중 70%는 공단 급여와 무관한 손해를 보전한 것으로 간주하여 구상금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번 재상고심에서 대법원은 파기환송심이 산출한 2,118만여 원의 지급액이 적정하다고 보고 피고의 상고를 최종 기각했다. 이는 당초 공단이 청구했던 치료비 전액보다 줄어든 수치로, 보험사가 이미 지급한 금액 중 건보 급여와 무관한 부분을 합리적으로 차감한 결과다. 법원은 이 과정에서 민간 보험사의 책임 범위와 공공기관인 건보공단의 대위 범위를 명확히 구분하여 시장 질서에 부합하는 결론을 내렸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공공보험과 민간보험이 혼재된 배상 체계에서 이중 배상 방지와 합리적 비용 분담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보험사가 피해자에게 지급한 보상금의 성격을 세분화하여 공단의 구상 범위를 획정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높였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향후 유사한 대형 사고 소송에서도 이 비율 산정 방식이 표준적인 판례로 인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공단의 구상권 행사가 위축되어 건강보험 재정에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보험금의 세부 항목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실무적 특성상 공제액 비율을 둘러싼 추가적인 증명 책임과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피해자의 온전한 배상 권리를 보호하고 가해자나 보험사의 이중 부담을 방지한다는 법치주의적 형평성 원칙을 우선시했다.

향후 보험업계와 건강보험공단은 사고 처리 및 합의 과정에서 지급 항목의 분류와 정산 방식을 더욱 체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자 입장에서도 민간 보험금 수령 시 항목별 명세를 명확히 하는 것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구상권 분쟁을 예방하고 권리를 보호하는 길이다. 이번 판결은 단순한 금액 결정을 넘어 사회적 재난 발생 시 비용 분담의 정의로운 기준을 확립한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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