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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컬럼] 최 장관, 대기업 경영진 월급 왜 지적했나?

[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전날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대기업들은 경력직만 선호하고 경영진 월급을 지나치게 많이 주고 있다"고 언급한 가운데, 대기업 경영진의 월급이 얼마나 되는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기업 관계자들은 장관이 기업의 월급에까지 관여한다며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해 매출 상위 100대 기업의 사내 등기임원은 평균 8억70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가장 많은 연봉을 준 삼성전자의 경우 이윤우 부회장, 최지성 부회장, 윤주화 사장 등 3명에게 총 179억4800만원(1인당 평균 59억8267만원)을 지급했으며, 현대자동차 외 대기업들의 연봉은 10-20억대였다. 등기임원이 아니더라도 주요 대기업 임원의 초임 연봉은 세금을 제외하고 평균 1억~2억원 수준이다.

하지만 국내 CEO들의 월급은 미국 CEO들에 비하면 매우 작은 수준이다. 급여 조사 전문기관인 에퀼라(Equilar)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200대 기업 CEO 평균 연봉이 1080만 달러(약 115억원)로 나타났다.

사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으로서는 탁월한 경영실적을 올릴 수 있는 유능한 CEO가 있다면 비싼 연봉을 주고서라도 영입하고 싶어한다. 또한 많은 연봉을 받는 CEO들을 시샘하기는 하지만,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은 모든 직장인들의 꿈이기도 하다. 그래서 직장인들에게 높은 연봉을 받는 CEO는 하나의 좋은 역할모델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CEO들이 많은 월급을 받는 것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 최 장관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최 장관의 지적은 "경영진에게 지나치게 많은 월급을 주고 있다"가 아니라 "(대기업 경영진의 월급)을 줄여 청년층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발언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경영진들에게 많은 월급을 주는 이상으로 청년층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기업이 투자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해주기를 당부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현대경제연구원과 최근 전국 20세 이상 남녀 2천24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올해 상반기 기업호감지수(CFI: Corporate Favorite Index)가 100점 만점에 낙제 수준인 50.8점이었고, 기업에 바라는 과제로는 일자리 창출(48.5%)을 가장 많이 꼽았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비호감인 기업들이 호감으로 바뀌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이미지 광고가 아니라 일자리 창출이다.

따라서 대기업 관계자들은 정부가 연봉 같은 문제까지 관여한다고 불편해할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의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더 깊이 인식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함께 노력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최 장관 뿐만 아니라 사회의 대다수들로부터 오는 대기업 CEO들을 향한 불편한 시각을 존경의 시각으로 바꿀 수 있는 많은 길 가운데 하나다.

또한 한국의 CEO들과 달리 빌 게이츠 등 미국의 전현직 CEO들은 기부를 통한 부의 사회의 환원에 힘쓰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일반인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월급을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움과 질투보다는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한국의 CEO들도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뛰어난 CEO로서 경영실적을 높이고 연봉을 많이 받는 것에만 초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들은 회사의 CEO도 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인생의 CEO도 되어야 한다. 어떻게 버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쓰느냐이다. 한국의 CEO들이 기부 등을 통한 부의 사회 환원에 더욱더 힘쓰게 될 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받는 많은 연봉의 액수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도 경영자로서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경받고 사랑받는 CEO들이 많이 나타나, 기업의 CEO들에 대한 이미지를 변화시켜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 끝이 아니라 달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정부와 장관이 CEO들의 월급이나 지적한다고 불쾌해하는 것은 달은 못 보고 손가락만 보는 격이다. 뛰어난 경영실적을 보여주며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수출의 역군 대기업들이 이것도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예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행할 수 있는 의지나 사랑이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