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립스키 IMF 수석부총재가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적인 경기후퇴는 없겠지만 세계 경제 관련 위험성은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고 26일 밝혔다. 다음날 공교롭게도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27일 "최근 전개되는 상황으로 볼 때 세계경제는 위험한 새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루를 두고 총재가 조금더 부총재의 우려에 대하여 조금 더 어휘를 분명히 하면서 향후 세계 장기침체 가능성에 대하여 표현을 분명히 했다. 또한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잭슨홀 연례 콘퍼런스 연설을 통해 3차 양적완화를 포함한 추가 경기부양책을 다음달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증거자료로는 미국 국채금리를 포함한 대표국채 금리의 하락을 들수 있다. 미국 국채금리는 사상 최저치로 하락을 기록하고 있다. 전 세계 자산의 벤치마크 지수로 활용되는 미국 국채 금리(10년물)는 18일 장중 잠시동안이었지만 대공황 때보다도 낮은 사상 최저치인 1.97%까지 떨어지다가 반등하여 2.07%로 마감했다. 유럽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독일 국채 분트(10년물) 금리도 2.08%로 연일 연중 최저치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이러한 국채 금리의 하락은 '확실하게 돈을 묻어둘 곳은 이제 시중은행도 아니다'는 간단한 사고에서 출발한다. 채권도 일종의 상품으로 생각해 본다면 믿을만한 투자처가 나라를 담보로 하는 마지막 금융 상품외에는 안전한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금값의 폭등과 맥을 같이 한다. 이렇듯 세계 경제의 불안이 높아질 때 나타나는 신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어 IMF 총재단의 언급에 공감대를 둘 수 밖에 없다.
세계 불황에 대한 시나리오는 일본이라는 국가를 통하여 먼저 경험한 바 있어 세계는 지표를 맞추어 가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에서 20년으로 가고 있는 모습과 비교하고 있다. 이를 보면 지난 일본의 해결 방식과 미국의 해결방식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더욱 신중한 비교가 이어지고 있다. 1997년 세출 삭감과 증세를 실시한 것처럼 미국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를 재정으로 막다가 디폴트 위기에 처하자 채무한도를 늘리는 방식으로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특히 불황 진입기로 볼 수 있는 1990년대 초반 일본의 과거 모습과 흡사하하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재정긴축이 미국 경기침체를 불러올 것이라는 위기감은 일본의 선례가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1990년 당시 7,8%대를 유지했던 일본 국채 금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줄곧 1%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1990년대 초반 유사한 경험을 한 일본의 정책운용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1985년 9월 플라자합의에 의해 엔화가 두 배 가까이 평가절상되었다. 이에 일본은행은 자국의 수출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정책금리를 5차례에 걸쳐 인하하는 등 금융완화조치를 통해 시중에 대량의 유동성을 공급하였다. 이때 일본은 초저금리를 활용해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해 각종 공공사업을 벌이다 국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에 따라 1985년말 13,000 수준이던 니케이 평균주가지수가 1989년 12월에는 사상 최고치인 38,915를 기록하였고 6대도시의 지가도 1990년까지 3배 이상 급등하였다.
그러자 일본은행은 1989년 5월부터 1990년 8월까지 5차례에 걸쳐 정책금리를 급속히 인상하였다.또한 일본정부는 부동산 관련 대출 증가율을 총대출 증가율 이내로 규제하고 부동산 관련 세제를 강화하는 등 급격한 긴축으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긴축정책의 영향으로 주식과 토지 가격이 급락하면서 실물경제가 침체국면으로 돌입하였다. 주가지수는 1992년 7월 전 고점 대비 60% 폭락하였고 6대도시 지가지수도 1995년에는 전 고점 대비 62%나 하락하였다. 보유주식 가격폭락과 부동산대출 부실화로 많은 금융기관이 도산하게 되었으며 이후 10년이 넘도록 일본경제는 침체의 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장기 침체는 증시로의 유입이 더디어지고 20년 가까이 하락하는 증시에 투자하느니 1%의 금리라도 따겠다는 전형적인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더욱 가중되었다. 이러한 신호전개가 현재 유사하게 이루어 진다는 점에서 미국 경제의 장기침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음은 물론이다. 미국과 유럽의 재정적자가 세계적인 대불황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들이다.
국내에서도 많은 경제학자들의 경고는 올 연말과 내년에 걸쳐 경기침체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데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와 정계 공방의 모습은 눈앞의 펼쳐진 근시안적인 사안의 공방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안타깝다. 최근 경제정책 이슈에 있어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논쟁의 주민투표 발의는 결국 서울 시민의 마음을 다 읽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버렸다. 사실 규모와 파급효과에서 볼 때 정치적인 배경이 더 컸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를 거부하자는 운동이 이루어 진 것도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의 대응이었고, 시장 사퇴와 함께 총선, 대선 정국을 앞당기게 된 점도 양당 모두 국민들의 진심어린 지지를 얻기 어려운 형국이다.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에 대한 논쟁은 너무 복잡한 화두일 수 있으나 국운을 두고 이 사안에 대하여 가장 중요한 화두로 두고 나라를 이끌어 가는 이들이 이제라도 심도 깊은 논의가 오가야 한다. 현재 양측의 주장에는 핵심 논지가 빠져 있다. 발의한 이슈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으로만 보일 수 밖에 없는 지금이다. 대기업의 막연한 감세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을 것이며, 국민들을 향한 막연한 복지혜택에 대해서도 세대간 지지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 우선순위를 두고 아무도 저성장과 불황을 걱정하지 않는것이 더 심각하다. 오히려 현 경제 정황의 수상함을 먼저 읽어 가고 있는 우리 기업들은 비상사태로 선포하고 준비하고 있다.
세계 경제 정황에 대해 한국만 빠져 나갈 수 없다. 혹여 장기간 L자형의 침체형 그래프가 펼쳐지게 되는 시나리오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더블딥이다 아니다의 논쟁은 이제 큰 의미가 없다. 세계 경제에 침체의 그림자가 엄습하고 있지만 정부나 정계의 관심은 오로지 달콤한 표심을 다루는 정치문제에만 예민해져 있다. 이 시대 국가를 진심으로 염려하고 충언을 쏟아내는 인물들이 정계에서도 꼭 배출되기를 간곡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