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안진석 기자] 기업 경쟁력을 해치는 불합리한 국가표준과 인증 제도가 대폭 손질된다.
표준이나 인증은 산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겹치거나 불합리한 운용으로 본래의 목적을 벗어나 오히려 경쟁력을 해치는 경우가 꽤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은 13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29차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표준(KS)과 각 부처의 기술 기준이 별도로 운용되면서 기업이 따라야 할 엇비슷한 규제가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 '국가표준·인증제도 선진화 방안'을 보고했다.
◇ 표준·인증 중복되거나 불합리하게 운용돼 기업 경쟁력 해쳐
국가표준은 KS 2만4천여종과 19개 부처가 개별 법률로 제정한 기술 기준 2만3천여종이 있는데, 같은 제품에도 서로 다른 규제가 적용돼 혼란을 낳기도 한다.
환경을 규제하는 KS와 환경부의 기술기준은 유사한 것은 148종에 달하고, 정보기기에 관한 국제표준은 기술표준원과 방송통신위원회가 각각 25종의 기술기준을 중복해 운용하고 있다.
자동차에 관한 KS와 기술기준은 22종, 의료기기는 17종이 비슷하게 운용되고 있다. 국토해양부와 기술표준원은 가구의 기준치나 시험 방법을 제각각 두고 있다.
제품의 적합성을 평가하고 증명하는 인증제도의 난립도 기업 경쟁력을 해치고 있다.
2007년에 96개이던 법정인증은 작년까지 112개로 늘었고 민간인증도 73개나 된다.
기업은 제품을 출시할 때 의무 인증을 받아야 하고, 공공기관의 조달 구매에서 가점을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여러 인증을 획득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고 유사한 인증을 위해 같은 시험을 반복하는 경우도 많다.
LED 램프를 예로 들면 KS는 17가지 시험항목이 있고 KC 인증에는 10가지 항목이 있는데 이 중 7가지가 중복된다.
최근 같은 시험을 반복하지 않도록 제도가 바뀐 덕분에 인증 기간은 100일, 비용은 114만원으로 줄었지만 그전에는 120일과 284만원이 필요했다.
또 KS의 인증기간은 3년인데 전체 인증 건수의 41.6%는 매년 심사를 받아야 한다. 정부는 1년마다 제품심사를 하는 품목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첫 심사 때 적합 판정이 나오면 다음번 심사를 면제해줄 방침이다.
2010년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서는 기업이 국내외에서 인증을 받는 데 쓰는 돈이 연간 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의 경직성 때문에 큰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서광현 기술표준원장은 표준이나 인증제도가 본래 취지에서 벗어난 이유에 대해 "각 부처가 기술 기준을 만들 때 국제 표준이나 국가 표준을 충분히 고려해서 만들어야 하는데 각 부처가 단독으로 만들었고 기술 기준의 관제탑 역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국가표준·인증제도 선진화 방안
국가표준·인증제도 선진화 방안에 따라 중소기업옴부즈만, 조달청,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 등 12개 부처는 겹치거나 불합리한 인증 규제 168건을 개선할 방침이다.
LED 램프 등 134건은 제품 시험 결과를 서로 다른 인증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기업의 부담을 가중한다는 비판을 받는 표준(KS)도 대폭 손질한다.
인증을 위해 거쳐야 하는 공장 심사를 이틀에서 하루로 단축해 비용을 36%(64만원) 줄이고, 최고경영자가 받아야 하는 16시간의 교육은 폐지한다.
지금은 기업들이 시험·검사 설비를 의무적으로 갖춰야 하지만 앞으로는 외주 관리도 가능해진다.
지경부는 이를 통해 중소기업 8200여 곳이 연간 4300억원의 경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술표준원과 조달청 등은 관계 부처와 협의해 공공기관의 조달 구매에 관련된 인증 가점 제도도 정비할 계획이다. 현재 기업들은 가산점을 받기 위해 여러 인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국가표준, 각 부처의 강제표준(기술기준), 국제표준을 일치시켜 기업이 지켜야 하는 엇비슷한 규제도 줄인다.
각 부처가 제정한 환경, 안전, 보건 관련 강제표준이 KS나 국제표준과 달라 기업이 내수용과 수출용을 구별해 만들어야 하는 불편과 비용을 없애겠다는 취지이다.
이를 위해 현재 기술표준원이 전담하는 KS 개발·운영권한을 각 부처에 위탁해 KS와 강제표준이 조화를 이루게 하고 국제표준과 일치시켜 나갈 방침이다.
각 부처가 강제표준이나 인증제도를 새로 도입할 때는 총리실이 중복 여부를 심사하게 된다.
정부는 이와 함께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시험장비를 공동 활용하게 해 시험인증을 서비스 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또 주요국 시험인증 동향을 입수해 수출기업에 맞는 형태로 가공해 제공하고 무역기술장벽(TBT) 지원단을 구성해 해외 시험인증 규제에 대응하도록 컨설팅 사업도 추진한다.
아울러 2015년까지 국제표준화기구(ISO·IEC)의 7번째 상임 이사국 진출도 모색한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나라가 보유한 원천 기술이 국제 표준이 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