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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삼성 이재용 경영권 불법승계 인정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에버랜드 경영권 승계과정이 배임행위에 의해 이뤄진 것임을 확인하고, 계열사와 주주의 이익보다는 재벌총수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불법행위에 대해 엄격하게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목된다.

22일 대구고등법원 제3민사부(재판장 홍승면)는 경제개혁연대가 주주를 모집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포함한 전직 제일모직 이사 및 감사를 상대로 진행한 주주대표소송 항소심 선고에서, 이건희 회장에 대해 1심과 동일한 금액인 130억4978만5316원, 제진훈 前 대표이사와 유현식 前 이사에 대해 위 금액 중 10%를 연대해 제일모직에게 배상하라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2심 판결이 이건희 회장에 대해 1심과 동일한 손해배상책임액수를 인정한 것은 피고 이건희 회장의 항소를 기각한 것으로, 사실상 원고 전부승소 판결이다.

이 사건은 1996년 10월경 에버랜드가 삼성그룹의 지배권 승계를 목적으로 한 주주배정방식의 전환사채 발행에 대해 당시 주주였던 제일모직이 고의로 실권해 회사에 끼친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 경제개혁연대가 지난 2006년 4월2일 제일모직 주주 3명을 원고로 이건희 회장 등 당시 제일모직 경영진 15인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건이다.

이에 대해 1심 판결은 2011년 2월18일, 이건희 회장과 유현식 前 대표이사, 제진훈 前 이사의 업무상배임행위와 임무해태를 인정해 원고의 청구금액 총 137억원 중 130억여원을 배상하도록 하는 사실상 원고 전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 외 나머지 임원들에 대해서는 제일모직의 정관 및 이사회 규정을 들어 전환사채 배정금액이 자본금의 10% 이상 투자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전환사채 실권과정에 관여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1심 판결에 대해 이건희 회장 측은 제일모직에 전환사채 인수포기를 지시한 사실이 없고, 증여세 등 조세를 회피하면서 이재용 남매에게 회사의 지배권을 이전할 목적이 아니었으며,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인수하지 않은 것은 경영판단이었다는 취지로 항소했다.

이에 대해 2심 판결은 이건희 회장 등이 직접 또는 비서실을 통해 제일모직에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하도록 지시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보아 이건희 회장의 항소를 기각했다.

또한 에버랜드 전환사채는 피고 이건희 회장의 장남 등에게 조세를 회피하면서 에버랜드의 지배권을 넘겨주기 위해 이건희 회장 등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제일모직에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하도록 한 것은 업무상 배임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제일모직에게 에버랜드 전환사채 실권을 지시했는지, 이러한 행위가 업무상 배임에 해당하는지 혹은 단순한 임무해태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이 사건 대표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는데, 2심판결은 이건희 회장의 주도로 제일모직에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하도록 지시한 사실을 인정했으며 이같은 행위는 업무상 배임행위라고 판단한 것이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은 이번 재판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과오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세계 일류 기업이라는 위상에 걸 맞는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경영을 위한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며 "그 전제조건으로 당시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에 실권해 손해를 입은 나머지 법인주주들의 손해도 자발적으로 배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