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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외환은행 홍보부, 왜 행장을 '그림자'로 만드나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최근 소강상태에 접어들기는 했지만 IT부문 통합(혹은 업그레이드) 문제로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노조간 갈등이 여전하다.

'한 지붕'에서 일어나는 이같은 갈등의 이유는 결국 소통의 문제에 따른 것이다. 외환은행 노조 측은 하나지주 측이 최소 5년의 독립경영 보장 합의를 깨고 외환·하나은행의 전산 통합을 강행하고 있다고 하고, 하나금융은 비용절감 차원에서의 업그레이드일 뿐 노조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한다. 제3자의 입장에서는 어느쪽 이야기가 맞는 것인지 도통 판단이 서질 않는다.

금융권에서는 외환은행 노조가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실력행사를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이 얼마동안 유지되든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 노조와 하나지주 측이 협상을 하려는 모양새인데 외환은행 경영진의 역할은 무엇이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기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당연히 두번째다. 외환은행 노조 측의 주장대로 하나지주가 약속을 어기고 은행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문제라면 외환은행장이 나서는 것이 모양새만 보더라도 바람직하다. 반대로 하나지주 측의 입장이 맞다면 외환은행장은 노조와 지주사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나설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윤용로 외환은행장의 입장은 무엇일까.

일단 그는 지난 8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2 KEB 한마음 전진대회'에서 "독립경영 합의를 위반하는 어떠한 경우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며 "은행장이 책임질 것이니 여러분들은 영업에만 매진해달라"고 주문했다.

이후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IT 통합 문제에 대해 "일부 직원들이 은행 통합으로 안다. 우리는 차세대 시스템을 2005년에, 하나는 2009년에 도입해서 바꿀때가 됐으니 업그레이드할 때 같이 하자는 것인데 IT 통합으로 알려져서 직원들과 노조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12일 '하나·외환 여자농구단' 창단식 자리에서는 윤용로 은행장을 따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직원들이 두 은행의 IT를 통합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데 설명하면 다 알아듣는다"며 "더 좋은 것(IT)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자리를 함께했던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과 김종준 하나은행장의 입장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의 변수가 생겼다. 취재한 내용으로 기사를 작성했는데, 외환은행 홍보부에서 윤용로 행장 관련 부분을 모두 삭제해달라고 부탁해왔다. 지주사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됐으니 삭제해도 무관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또한 마침 이날 저녁 본점 앞에서 노조 측이 대규모 촛불집회를 진행하던 차라, 직원들이 기사를 보면 윤 행장의 입장이 난처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한 직원은 아예 "행장님께서 워낙에 기자님들 질문에 말씀을 너무 잘해주시지 않느냐"며 "IT 문제에 대해서는 행장님을 그림자로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은행 홍보부는 지난 '전진대회'에서 기자들의 수차례 요청에도 불구하고 윤용로 행장과의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아 기자들의 빈축을 샀었다. 당시 한 기자는 "따로 행장을 만나러 가려는데 막더라. 네번이나 요청해서 겨우 됐다"고 꼬집었다.

마치 홍보부가 소통을 막는 듯한 모양새인데, 이에 대해 일단 홍보부가 의식하는 노조 측과의 관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윤 행장의 입장은 한마디로 지주사 입장과 같기 때문에 노조와의 입장과는 상충되고, 따라서 홍보부가 노조 측과 같은 입장이라면 윤 행장의 입장이 대내외에 알려지면 좋을 것이 없다.

하지만 노조 한 관계자는 "론스타 투쟁때는 홍보부가 직원들의 편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자신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하나지주 쪽이다"고 했다.

이 말대로라면 홍보부가 윤 행장 관련 기사 삭제를 부탁할 것이 아니라, 노조의 주장에 대한 반박 내지는 참고자료를 내야할 판이다. 하나금융 관계자들도 외환은행 홍보부의 입장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그렇다면 홍보부가 윤 행장에 대한 충성심으로, 혹시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등과 같은 조바심으로 그를 보호하고자 노력하는 것일까.  

물론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것을 문제삼기는 어렵다. 하지만 윤용로 행장은 '섬김의 리더십'을 구사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직원들의 마음을 열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본점 2000여 직원들과의 악수를 마다하지 않았고, 보수적인 업계 관행을 깨고 행장인 자신이 직접 광고에 나서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외환은행 경영진이 IT 통합 문제를 은행 노조와 지주사간 갈등으로 방치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환은행 홍보부는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다시한번 고민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