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최근 금융위원회가 최근 도덕적 해이 논란에 휩싸인 웅진그룹의 법정관리 신청과 관련해 정부 차원에서 기업구조조정제도 개선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소지가 큰 법정관리 제도에서 채권단의 견제장치를 강화하는 동시에 채권단 주도의 워크아웃을 활성화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하지만 이번 기업구조조정 제도 개선 방침 발표가 2013년 12월 말로 일몰 폐지될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이하 기촉법)을 상설화해 관치금융을 계속하겠다는 감독당국의 꼼수가 아닌지 우려된다. 웅진그룹의 도덕적 해이를 계기로 제기된 법정관리 제도의 문제점이 결코 기촉법에 따른 워크아웃 제도의 우월성을 반증하는 것은 아니며, 워크아웃 제도는 그 이상의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부실기업의 회생을 지원하는 제도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통합도산법에 따라 파산법원이 주도하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법원 밖에서 채권자와 채무자가 자율적으로 협의해 처리하는 워크아웃 방식이다.
워크아웃과 기업회생절차는 몇가지 차이점이 있다. 우선 워크아웃이 채권금융기관의 금융채권만을 동결시키는 것인데 반해, 기업회생절차는 금융채권뿐만 아니라 일반 상거래 채권까지 동결시킨다. 이번 웅진그룹의 경우 기업회생절차를 채택한 결과 극동건설 협력업체의 상거래 채권 약 3000억원이 묶여 파장이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워크아웃이 재무개선약정을 맺고 채권단이 계속 개입하는 반면, 기업회생절차는 파산법원이 관장해 채권단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DIP(Debtor in Possession)제도를 통해 기존 경영진이 사실상 계속 경영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85% 가량 된다는 점이다. 웅진그룹이 워크아웃이 아닌 기업회생절차를 선택한 것도 결국 이 DIP 제도를 악용해 경영권을 유지하려 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이번 웅진그룹 논란을 계기로 통합도산법상 기업회생절차의 문제점이 부각됐고, 그 반사효과로 마치 워크아웃 방식이 더 효율적이고도 공정한 기업구조조정 제도인 것처럼 오도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5일자 금융위의 보도자료 역시 그러한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진실이 아니다. 워크아웃 방식에서도 지배주주의 도덕적 해이 문제는 언제나 논란이 됐다.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SK그룹의 최태원 회장, 대우건설 인수로 부실화됐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삼구 회장 등이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경영에 복귀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또 워크아웃 기업들의 회생 비율이 높은 것은 워크아웃 방식 자체의 효율성에 기인하는 것이라기 보다, 애초에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을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하고(이른바 selection bias) 여기에 공적자금을 기초로 한 채권금융기관의 지원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기촉법 자체도 채권자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사적 자치의 원칙에 위배되는 등의 위헌 소지 및 감독당국의 개입에 의한 관치금융의 우려가 크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의 개별 대기업에 적용되는 기촉법을 제외하면, 워크아웃 방식의 대부분은 법적 근거도 없이 채권단의 자율협약에 의존해 진행된다는데 있다. 말이 자율협약이지 실제로는 감독당국이 커튼 뒤에서 개입하는 관치금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으며, 그 결과 채권자·소액주주·노동자 등 이해관계자의 권익이 침해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감독당국은 기업집단·개별대기업·중소기업 등 '기업규모별'로, 건설·조선·해운 등 '업종별'로 채권단이 주도하는 워크아웃 방식을 통해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그 어느것도 긍정적 성과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주단 협정'이라는 채권단 자율협정을 통해 진행된 건설업 구조조정의 경우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은폐하기에 급급했고, 그 결과 부실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웅진그룹의 극동건설 사례가 보여주듯이, 최근 중견 건설회사 상당수가 심각한 부실에 직면했는데, 그 대부분이 '대주단 협정'에 따른 지원을 받은 회사들임을 감안하면 워크아웃 방식에 내재된 관치금융의 폐해를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부실은 숨긴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통합도산법상의 기업회생절차에 대한 비판은 부실기업주가 계속 경영권을 유지할 가능성, 즉 DIP 제도의 악용 가능성에 모아진다. DIP 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채무자 친화적(debtor-friendly)이라고 평가되는 미국 도산법(U.S.C. Chapter 11)에서 연유한다. 기존 경영진이 기업의 회생에 필요한 노하우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미국 도산법이 DIP 제도를 비롯한 채무자 친화적 성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부실기업주의 불법부당행위에 대해 엄격한 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보완적 장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 통합도산법상 기업회생절차의 본질적 문제점은 DIP 제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부작용을 제어할 수 있는 보완적 제도와 관행의 결여에 있는 것이다.
이번 웅진그룹이 법정관리 신청 직전에 계열사 채무를 먼저 상환한 것은 이미 우리나라 통합도산법에도 이미 들어와 있는 부인권을 엄격 적용해 원상회복하면 된다. 또한 법정관리 직전에 특수관계인이 미리 계열사 주식을 처분한 혐의는 내부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행위 여부에 대해 엄격히 조사해서 처벌하면 된다.
또 이처럼 문제가 많은 기존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기업의 회생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면, 채권단 등 이해관계자의 이의제기 절차를 보완해 기존 지배주주를 관리인에서 배제하거나 채권단이 추천하는 공동관리인을 선임하면 된다.
그럼에도 현행 통합도산법상의 기업회생절차에 치유 불가능한 근본적 하자가 있는 것처럼 매도하면서,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워크아웃 방식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금융감독당국의 태도에는 뭔가 불순한 저의가 있는 것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금융감독당국의 의도를 불신하는 데에는 기촉법의 변천 과정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워크아웃 방식은 외환위기 직후에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해 영국의 London Approach를 참고해 도입한 제도다. 애초에는 '기업구조조정 촉진을 위한 금융기관 협약'(1998년 6월)이라는 이름의 채권단 자율협정으로 시작했지만, 2001년에 5년 시한의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으로 비로소 법적 근거를 갖추게 됐다. 이후 기촉법은 위헌 소지 및 관치금융 논란을 빚다가 시한 연장되지 못하고 2005년 말에 폐지됐다.
이후 금융감독당국은 시장에서의 자율적 구조조정 관행이 정착되지 못했고 기존의 워크아웃 기업을 계속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기촉법의 재입법을 국회에 요청했고, 결국 2007년에 1차 기촉법과 사실상 동일한 내용으로 재입법됐다. 2차 기촉법 역시 시한인 2010년 말에 일몰 폐지됐는데,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구조조정 필요성 등을 이유로 2011년에 3차 재입법된 것이다.
2013년 말을 시한으로 현재 시행되고 있는 3차 기촉법은 과거의 1, 2차 기촉법과는 다른 점이 몇가지 있다. 특히 채무기업만이 워크아웃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채권단이 워크아웃 신청부터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문제를 해소했고, 또 반대채권자의 채권을 찬성채권자들이 6개월 이내에 매입하도록 하는 등 일부 진전을 이뤘다.
그런데 5일자 보도자료를 보면, 금융위는 현행 3차 기촉법상의 워크아웃 제도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기촉법의 워크아웃 신청주체 확대(현행의 기업만→채권단 추가), 상시법제화, 법 적용대상 신용공여 범위 확대 등에 대해 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서 '워크아웃 신청주체 확대'와 '상시법제화'는 2011년 3차 재입법 당시의 취지를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며, '법 적용대상 신용공여 범위 확대'는 현재 채권단 자율협정으로 진행되는 여타 워크아웃 방식도 법적 근거를 갖춰 상설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도산법 관련 전문가 대다수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기촉법 상의 워크아웃 제도는 조만간 폐지하고, 통합도산법상의 기업회생절차로 통합해야 한다. 이것이 2011년 3차 기촉법 재입법 당시 금융위가 국회에서 한 약속이다. 5일 발표된 금융위의 방침은 국회를 기만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 과도기적으로 워크아웃 방식을 당분간 더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방향은 지금 금융위가 획책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로 가야 한다. 워크아웃의 진행 과정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해관계자가 법원 등 제3자의 판단을 구할 수 있는 절차를 명확하게 규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웅진그룹 케이스를 계기로 제기된 기업회생절차의 문제점이 곧바로 워크아웃 방식의 '과거 회귀'·'상설화'·'적용 확대'의 근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금융당국을 장악하고 있는 모피아(재무부 출신인사)의 관치금융을 더욱 만연케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현행 기업회생절차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보완하면 된다. 즉, 부실기업 구조조정 과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지배주주에게 부실에 상응하는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 방향으로 제도와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또한 금호아시아나그룹, 웅진그룹 등과 같이 무리하게 계열확장을 추진하다가 이른바 '승자의 저주'에 걸린 사례를 막기 위해서는 일정규모 이상의 M&A의 경우 사전에 주주총회의 승인을 얻도록 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책을 검토해 볼 수 있다.
감독당국이 이러한 근본적 해결책을 외면한 채 관치금융적 대응에 몰두한다면 더 큰 위험과 비용을 초래할 것이다. 금융위는 웅진그룹 논란을 빌미로 관치금융을 강화하겠다는 꼼수를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