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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관련 기재부 보고서 보니…'역시 모피아'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기획재정부가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공약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내부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을 빚고 있다. 보고서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등의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의 대부분에 대해 부작용을 우려하며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번에 논란이 된 기재부의 '경제민주화 관련 이슈' 문건은 '단순 내부 참고용으로 작성된 실무 차원의 정리 자료'라고 한다. 하지만 그 내용을 확인해 본 결과, 아무리 내부용 참고자료라고 하더라도 기재부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인식은 우려스러운 수준이었다. 이를 방치한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경제민주화는 좌초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재부가 모든 사안에 대해 재계와 판박이처럼 똑같은 의견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경제적 약자의 의견도 공정하게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전제조건인데, 기재부는 재계의 의견만을 반영하는 태도를 갖고 있다.

기재부가 작성한 '경제민주화 관련 이슈'는 경제민주화 일반, 대기업 규제, 중소기업 보호, 기타 영역에서 총 18개의 예상 질의와 이에 대한 모범답안을 담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국회 업무보고 등에 대비해 기재부의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추정되며, 여기에는 헌법 제119조의 해석론에서부터 출총제, 순환출자, 재벌세, 금산분리, 중소기업 적합업종, 골목상권, 기업범죄 양형 강화 등에 이르기까지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대부분 경제민주화 관련 사안들을 문답식으로 정리하고 있다.

보고서에 대해 기재부는 내부 업무 참고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기재부의 공식 견해가 아니라며 해명하고 있지만, 사실상 현재 기재부의 입장을 가장 명확히 확인 할 수 있는 근거자료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보고서에 언급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헌법 제119조 해석론과 관련해 '경제민주화는 시장경제 질서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민주화와 대외경쟁력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경제민주화 논의가 과열되어 대기업 규제를 통한 대·중소기업 간의 격차 해소에만 치중한다면 대외 경쟁력을 저해하게 될 것이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대기업 규제와 관련, 재벌 총수가 1% 지분을 갖고 황제경영을 하는 것에 대해 '해외에도 도요타 그룹, 프랑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그룹, GE 등 외국 기업집단에서도 나타나는 형태이며, 순환출자 외에도 차등 의결권 주식, 피라미드, 상호출자 등 다양한 형태의 Control Enhancing Mechanism이 존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금산분리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는 금산분리 원칙이 제도적으로 잘 정착된 나라'로 판단하고 있고, 지주회사 규제와 관련해 '국내 일반지주회사의 부채비율은 43.3%로 현행 법률요건(200%)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며 계열사의 지분보유 요건을 높이게 되면 기업의 신규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상 기재부 문건에 담긴 내용들은 오래 전부터 재계 측에서 주장해오던 것과 사실상 동일한 것으로, 표지만 가린다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나온 보고서로 착각할 정도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소기업 보호와 관련 징벌적 배상제도의 확대적용에 대해서는 '배상 비율이 과도하게 높은 경우, 거래의 배상금을 노린 묻지마式 소송이 증가해 기업 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 골목상권 보호는 '대형마트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보다는 전통시장 등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대해서는 '보완은 필요하나 과도한 형사처벌이나 고발 의무화 등은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신중히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재계에서나 주장할 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 외 기업범죄에 대해 '과도한 기업범죄 처벌 강화는 기업가 정신의 후퇴, 투자심리 위축 등의 부작용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고, 전속고발권은 경쟁제한 행위 판단의 어려움, 형벌의 보충성 등을 고려할 때 존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혀 최근 논의에 역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747공약'과 양극화에 대해서는 '대외여건 악화로 성장률이 낮아진 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며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선전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전제한 후, '2008년 이전 우리경제 성장률은 세계경제 성장률보다 낮았으나 2008년 이후에는 높아졌으며,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되던 지니계수 등 소득 양극화 지표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고, 우리나라 소득양극화 정도는 OECD 평균 수준에 해당하여 높은 수준은 아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내부 보고서에 담긴 기재부의 입장은 경제민주화가 경제성장과 배치되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요구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에 기초한 재벌 위주 성장전략, 시장만능주의에 의거한 승자독식주의 전략이 성장을 가져오기는 커녕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위기를 초래할 뿐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또한 다수의 국민이 균등한 기회를 갖고 공정하게 경쟁하며 그 과실을 공평하게 나누는 새로운 경제질서를 통해 질적 성장을 이루자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는 경제성장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성장 전략이다.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국민의 요구를 부정하는 '모피아'(재무부 출신인사)는 기득권 세력의 대변자일 뿐이며, 이 때문에 개혁의 최대 걸림돌이라는 비판을 듣는 것이다.

올해 대선의 최대 이슈는 당연히 경제민주화 정책공약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빅3'로 불리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 공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는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고 바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책을 만드는 것과 이를 구현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민주화 정책을 구현할 현실적 수단이 될 모피아가 이처럼 구래의 낡은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면, 경제민주화는 요원할 뿐이다.

'정권은 바뀌어도 모피아는 영원하다'는 말이 있다. 각 대선 후보들은 당선 이후 경제민주화 추진 세부 계획까지 마련해 두어야 하고,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모피아 개혁부터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