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라응찬 前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1998년부터 23개의 은행·증권 차명계좌를 통해 2008년까지 누적으로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운용하며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세 아들에게 총 46억원을 증여한 사실이 23일 추가로 확인됐다.
그동안 각종 의혹에도 불구하고 라응찬 前 회장에 대한 과세당국, 감독당국, 검찰의 조사 및 제재는 너무나 미약한 수준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이번에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비자금 운용사실이 추가적으로 알려지면서, 이들 사정당국의 '봐주기 수사' 내지 '솜방망이 처벌' 의혹이 가중되고 있다. 한마디로 사정당국이 라응찬 前 회장에 대해 제재를 안 한 것이냐, 아니면 못한 것이냐는 지적이다.
라응찬 前 회장과 관련된 사건을 시간 순으로 풀어보면, 2009년 검찰이 노무현 前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를 벌이던 중 2007년 라응찬 前 회장의 차명계좌에서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게 전달된 50억원이 발단이 됐다.
이와 관련해 국세청은 2008년 11월 신한금융지주 등에 대한 세무조사를 통해 라응찬 前 회장의 차명계좌를 확인해 검찰에 통보한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검찰은 라응찬 前 회장에 대해 금융실명법 위반만을 문제 삼아 불기소 처분결정을 내렸다.
2010년 3월 라응찬 前 회장은 연임에 성공했지만 정치권에서 비자금 관련 의혹제기가 계속됐고, 이에 금감원은 라 前 회장에 대한 금융실명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런 와중에 라응찬 前 회장과 신상훈 前 사장간 경영권 다툼인 이른바 '신한 사태'가 발생했고, 라 前 회장이 사퇴하기에 이른다.
얼마 후 금융위는 라응찬 前 회장에게 금융실명법 위반에 따른 업무정지 3개월의 제재를 내렸고, 고소 건과 관련 2010년 12월 검찰은 라응찬 前 회장에 대해서는 무혐의, 신상훈 前 사장과 이백순 前 행장에 대해서는 불구속기소해, 지난 16일 각각 일부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이상 일련의 사건에서 신한금융지주의 경영권 분쟁이 쟁점으로 부각됐고, 라응찬 前 회장의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 보유에 대해서는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극히 소홀히 취급되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이번에 라 前 회장의 차명계좌 관련 불법행위 정황이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됐고, 그동안 의혹으로만 남아있던 부분들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 및 제재가 불가피하게 됐다.
먼저, 사건을 최초로 인지한 국세청은 라응찬 前 회장이 차명으로 관리해 오던 계좌를 확인해 검찰에 통보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때 어느 정도 규모의 차명계좌가 확인됐는지 알려지지는 않았으며, 특히 차명계좌의 자금이전에 따른 증여세 탈루 여부를 확인하고 과세했는지도 알 수 없다.
만약 현재 발견된 23개 차명계좌 전체에 대해 증여세 과세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국세청은 증여세 탈루 여부를 조사·조치해야 할 것이며,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그 결과를 소상히 공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검찰은 라응찬 前 회장이 차명계좌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게 된 경위 및 사용처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
또 지난 2009년 검찰은 라 前 회장의 비자금 의혹에 대해 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기소 결정을 내렸는데, 당시 모든 차명계좌를 면밀히 확인한 것인지 아니면 일부 계좌에 대해서만 확인한 것인지에 대해 해명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드러난 차명계좌가 당시에도 모두 확인됐다면, 비자금 조성 경위 및 사용처를 파악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른바 '남산 3억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前 의원에게 전달된 것임을 증언하는 관련자들의 진술이 일관성이 있음을 인정했는데, 검찰이 이에 대해 아예 수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묻고 재수사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이와 함께 과거 금융당국이 라응찬 前 회장의 차명계좌(주주 4명의 차명예금)를 기준으로 금융실명법 위반에 대해 징계조치를 내렸지만 추가적인 차명계좌가 발견됨에 따라, 이에 대한 금융실명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라응찬 前 회장은 차명재산으로 신한금융지주의 주식을 보유했다는 것이 나타남에 따라, 라응찬 前 회장의 주식보유신고서 공시의무 위반 여부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 조치할 필요가 있다.
한편, 감독당국이 라응찬 前 회장에 부여된 스톡옵션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불법행위를 저지른 임직원의 스톡옵션을 제한하는 것은 금융기관의 공공성이 비추어보면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3인의 신한사태 당사자들 중 유독 라응찬 前 회장에 대한 스톡옵션만 이사회의 지원에 힘입어 행사됐고, 이는 감독당국이 스톡옵션 취소에 대한 관련 법령의 미비점을 방치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와 사정당국의 관계가 의심받는 상황에서는 금융산업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라응찬 前 회장의 불법행위 의혹은 물론, 이와 관련된 사정당국의 봐주기 의혹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와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