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최근 금융감독원의 퇴직연금 비교공시에 따르면, 롯데손해보험은 퇴직연금 적립금 7163억원 가운데 계열사 물량이 93.9%에 달해 계열사 몰아주기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하이투자증권은 계열사 비중이 81.9%에 달하고, 삼성생명(49.8%), 삼성화재(44.4%) 등 퇴직연금의 계열사 몰아주기 비중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재벌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 행태는 제조업과 비제조·서비스업 뿐만 아니라 금융업에도 만연해 있다는 것이 사실로 증명됐다. 국민들의 경제민주화 바람과 재벌개혁 요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벌 계열사들의 불공정거래는 국회의 무능함과 정부의 방조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국회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을 통해 해당계열사 매출액의 30%가 넘는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증여로 간주하고 과세키로 한 바 있다. 하지만 개정안의 기준이 전체매출액 기준으로 설정된 허점이 있다.
정미화 경실련 금융개혁위원장(변호사)은 "현재 금융계열사의 전체매출액에서 퇴직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낮기 때문에, 위 개정안 기준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규제를 하지 못한다"며 "결국 재벌금융계열사들은 아무런 제한없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땅 짚고 헤엄치듯 재벌 총수의 배를 불리고 있는 셈이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퇴직연금 비교공시를 통해 업계의 자율적인 시정노력을 주문하고 있지만, 사전규제는 물론 사후규제의 실효성마저 없는 현행 법규체제 아래서 재벌이 불공정행위를 스스로 개선하고 자율적인 시정노력을 기울일 유인은 없어보인다. 경제민주화가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정부의 행태는 오히려 재벌을 비호하고 불공정거래를 방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 행태는 재벌 총수의 배만 불릴 뿐 아니라, 건전한 경쟁을 가로막아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켜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는 재벌들의 일감 몰아주기를 실효성있게 제재할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미화 위원장은 "먼저 금산분리 강화를 통해 금융계열사와 일반계열사를 분리해 금융계열사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를 사전 차단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금융지주회사법과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에 따른 금산분리 규정을 두고 있지만, 이 또한 재벌 금융계열사에 대한 규제는 전무한 상황이다. 이러한 법적 허점으로 인해 아무런 규제없이 자유롭게 금융계열사와 일반계열사 사이의 출자를 비롯해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거래가 만연하게 됐고, 따라서 지주회사 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집단에 대한 금산분리를 강화하는 규제로 확대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정 위원장은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에 대한 규정을 구체화해, 사문화되다시피한 불공정거래 행위 제재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공정거래법 제23조 7항은 계열회사 등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지원행위를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조문에 명시되어 있는 '부당성'과 '현저히 유리한 조건'에 대한 구체성이 떨어져 해당 조문은 거의 사문화됐다.
따라서 부당성에 대한 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법적 불완전성을 해소하고, '현저히' 라는 문구를 삭제해 통상적 거래관행을 넘어서는 유리한 조건인 경우는 위법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당 조항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 정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기웅 경실련 경제정책팀 부장은 상증세법 개정을 통해 일감몰아주기를 방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현행 일감몰아주기 과세를 보면 계열사를 통해 몰아준 거래물량에서 30%를 빼주고 있어 실제적으로 이 비율이 30%만 넘지 않으면 과세를 피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면죄부를 제공하게 된다. 금융 계열사들의 경우 퇴직연금이 전체매출액에 차지하는 비중이 작으면 30% 규정은 더욱 규제의 힘을 잃는다"며 "특수관계법인과의 거래비율 30% 공제를 삭제해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증여이익에 대해 실질적 과세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