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최근 이른바 '삼성家 상속 소송'에서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승소 판결이 오히려 삼성생명의 주식과 관련한 불법 또는 법률적 문제가 있음을 확인시켜 줬다는 지적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14일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이번 사건이 삼성가 형제들 간의 민사소송이기는 하지만, 과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삼성특검 수사 당시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의혹을 상당 부분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하에 예의주시하고 있었다"며 "삼성생명 차명주식의 상당부분은 이병철 선대회장의 상속재산이 아니라 1988년 9월 유상증자 당시 제일제당·신세계의 실권분이 새로 차명재산으로 전환된 것이라는 주장이 사실임을 재판부가 최종 확인해줬다"고 밝혔다.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2부(재판장 서창원 부장판사)는 이맹희 前 CJ그룹 회장 등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 제기한 주식인도소송에서, 제척기간이 도과됐거나 상속재산으로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일부 기각 및 일부 각하 판결을 내렸다.
이번 소송에서 쟁점이 된 부분은 삼성생명 주식 등 청구원인이 상속재산과 동일한 것인지 여부와 제척기간 도과 여부였다. 재판부는 삼성생명 주식과 관련해 상속재산으로 인정되는 50만주(액면분할 후 기준) 중 이맹희 씨 등의 상속분 합계 17만7732주에 대해서는 10년의 제척기간이 경과했다는 판단을 기초로 부적법 각하했다. 또한 나머지 삼성생명·삼성전자 주식과 이에 따른 이익배당금 등은 상속재산이 아니며, 따라서 공동상속인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아 기각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건희 회장이 상속분할협의에 의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차명주식을 단독으로 상속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2008년 4월 논평을 통해 임직원 명의 삼성생명 지분 모두가 이건희 회장이 차명상태로 상속받은 재산이라는 특검 결론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던바 있다.
김상조 소장은 "우선 이병철 선대회장 사망 이후 삼성생명이 1988년 9월 실시한 유상증자와 관련해 당시 총 52%의 지분을 보유한 신세계와 제일제당이 실권했는데, 이는 에버랜드의 CB 및 삼성SDS의 BW 헐값 발행과 같이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총수일가가 불법적 사익을 취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으므로 배임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또한 "20년 가까이 진행된 생보사 상장 논란 과정에서 삼성생명이 1990년 자산재평가 적립금을 기초로 실시한 무상증자 부분은 삼성생명의 유배당 계약자의 손해를 기초로 한 것이라는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특히 "1997년 4월과 1998년 12월에 각각 주당 9000원에 삼성생명 차명주식을 삼성에버랜드에 넘긴 것은 현저히 저가에 의한 부당주식거래의 사례로, 이재용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그룹차원의 결정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끝으로 김상조 소장은 "물론 이상의 불법행위에 대해 이건희 회장은 그 어떠한 형사적·민사적 제재도 받지 않았다. 나아가 이번 1심 판결 내용이 그대로 확정된다면, 이건희 회장은 형제들에게도 재산을 나누어주지 않아도 된다. 즉 이건희 회장은 재산을 그대로 지킬 수 있을 것이다"며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재산 중 상당부분과 삼성그룹 소유구조의 골간이 불법위에 서 있다는 것은 법원의 판결을 통해 역사에 기록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 삼성특검 부실수사 명백히 드러나
2008년 4월17일 삼성특검은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 명의의 삼성생명 주식 51.75%가 모두 이병철 선대회장 사망시 차명상태로 상속받은 이건희 회장 소유의 차명재산이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경제개혁연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계열분리 전 삼성그룹 계열사였던 신세계와 제일제당(現 CJ)은 이병철 선대회장 사망 시점인 1987년말까지 각각 29.00%와 23.00%, 합계 52.00%의 삼성생명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삼성생명의 차명주식은 결코 48.00%를 초과할 수 없었으므로, 임직원 명의의 차명주식 51.75%가 모두 상속재산이라는 삼성특검의 수사결과는 애당초 성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 이번 상속분쟁의 1심 재판부는 이병철 선대회장 사망 당시 삼성생명의 발행주식 총수는 60만주(총 주주 20명), 이 중 16만8000주(28.00%)가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 15명의 명의로 보유하고 있었고, 1988년 9월 삼성생명의 100% 유상증자 결정에 따라 발행된 신주 60만주 중 실권된 35만9000주를 30명의 새로운 형식주주(차명주주)에게 배정됐다고 봤다.
이 35만9000주 중 4만7000주는 기존 차명주주에게 배정했지만 실권한 것이고, 나머지 31만2000주는 신세계와 제일제당이 실권한 부분이다. 이는 경제개혁연대가 추정한 바와 같이, 1988년 유상증자 당시 신세계와 제일제당의 실권분(26.00%)이 새로운 차명된 재산으로 전환된 것임을 재판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해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삼성특검은 당시 이러한 내용에 대해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이건희 회장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차명주식 전부가 상속재산이라고 판단했는데, 이 부분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음이 재확인됐다.
결국 삼성특검은 시민단체도 확인할 수 있었던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간과함으로써, 사실상 '삼성 봐주기' 내지 '삼성 면죄부' 수사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김상조 소장은 "삼성특검은 차명재산의 원천과 그 사용처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음으로써 이번 삼성가 형제들 간 상속분쟁의 빌미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사법 정의와 경제민주화를 진전시킬 수 있는 역사적 호기를 날려버렸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