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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갑을관계' 개선 싫은속내 드러낸 남양유업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여러 난항을 겪은 끝에 지난 24일 우원식 의원(민주통합당)의 중재로 남양유업과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이하 협의회)의 제2차 교섭이 성사됐다.

이날 남양유업이 '상생을 위한 협상(안)'으로 제시한 바의 주요 골자는 불공정 거래행위의 금지, 상생위원회 등의 설치, 발주 시스템 등의 개선, 대리점에 대한 회사의 상생지원책 등이다. 남양유업이 적극적으로 상생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들여다보면 아직도 기존의 갑을관계를 벗어나고 싶지 않은 남양유업의 의도가 뻔히 보였다.
 
먼저, 남양유업이 자행해온 밀어내기, 금품요구, 마트 파견사원 임금 떠넘기기 등의 잘못에 대한 인정과 사과는 협상안에서도 교섭과정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협의회가 1차 교섭에 들어가기 전부터 요구해온 안의 첫번째 사항이었지만, 이와 관련해 남양유업은 법률상 금지되어 있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당연한 사항들만을 협상안으로 내놓았을 뿐이다.

또한 교섭의 시작과 함께 협의회는 제2차 교섭을 앞두고 남양유업이 아직 협의회에 가입하지 않은 대리점주들에게 새로운 대리점협의회를 구성하도록 강권하고 포섭한 것에 대해 해명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남양유업은 "그런 바가 없다", "아는 바가 없다"는 식의 발뺌으로 일관했다.

여기에 남양유업은 교섭과정 내내 과거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말고 앞날을 위한 논의를 하자면서, 불공정한 갑을관계가 지속되어왔던 과거에 대한 진지한 자기성찰과 반성이 없는 체로 교섭에 나섰다.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것이다.

협상안의 내용들 또한 실망스럽다. 우선 갑과 대등한 위치에서 교섭할 수 있는 단체의 인정과 교섭, 협약체결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남양유업의 협상안에서는 양 당사자간의 분쟁과 갈등을 객관적으로 조정하고 약자인 '을'을 돕기 위한 공익위원 참여가 배재된 가운데, 갑·을만으로 상생위원회를 구성하고 협의를 한다는 허울뿐인 내용만이 남은 것이다.
 
밀어내기를 원천차단할 수 있도록 대리점주의 동의없이는 발주내용을 수정할 수 없도록 하는 발주시스템 개선 요구도 남양유업이 변경사유를 입력하면 여전히 대리점주의 동의없이 수정할 수 있다는 안으로 바뀌어 있었고, 대리점주의 계약갱신청구권은 언급조차 없었다.
 
이른바 '상생지원책'도 그 이행을 담보할 방안이 없다. 그 밖에도 회사의 부당한 행위에 지쳐 헐값에 대리점을 양도한 자들은 영업권 회복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점, 불법행위로 피해를 입은 자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기준조차 정하지 않고 따로 보상처리기구를 만들어 논의하겠다고 함으로써 사실상 보상을 하지 않겠다는 점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산재해 있다.

결국 남양유업은 교섭 자리에서 지금까지의 갑과 을의 관계를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속내를 보여준 것에 불과했다. 남양유업이 교섭에 나선 이상 교섭과정과 협약안의 내용을 통해 협의회를 '을'이 아닌 대등한 당사자로서 존중하고 진지하게 교섭에 임하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 교섭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의 공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